September 20, 2011

E-Worship (디지털예배)

나는 전에 가끔 주일예배를 가기전에 고민하던것이 한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성경책을 가져갈것이냐 말것이냐 였다. 아니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하시는 분들도 있을수 있겠다. 예배를 가는데 성경책을 가지고 가지 않다니? 군인이 전쟁에 총알 없이 나가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내가 이런 고민을 했던 이유는 바로 내가 갖고있는 iPhone 에 성경 애플리케이션이 있기때문이다. 즉 아이폰 으로 성경책을 볼수 있는데 굳이 성경책을 또 들고갈 필요가 있나 라는 고민을 했었다. 물론 난 항상 그래도 성경책을 가져갔던거 같다. 아직까지는 성경책 을 들고가지 않으면 뭔가가 허전한 느낌이어서 그랬을까? 뚜렷한 논리적인 이유는 찾을수 없었지만 그래도 성경책을 꼭 같고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님께 예배드리러 가는데 어떤 형식으로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그랬던거 같다. 그러나, 성경책을 가져갔음에도 불구하고 아이폰으로 성경책을 봤던적도 많았다. 아이폰이 성경구절을 찾기가 훨씬 쉬어서 였다.

이런 고민은 나만 하는건 아닌거 같다. 최근에 읽은 뉴스(이곳 클릭)에 의하면 많은 미국인 기독교인들도 아이폰 이나 아이패드, 킨들 같은 전자제품을 이용해 성경책을 보는 경우가 증가 하는 추세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것 같기도 하다. 미국의 큰 서점 체인점인 Borders 와 Barnes And Novels  는 파업을 하거나 paper book 판매는 대폭 줄이고 디지털북 과 온라인 서점 만을 운영하고 있다. 아이패드의 등장이후 미국의 많은 사람들이 더이상 종이로 만들어진 책보다는 디지털책 즉 iBook 을 더 많이 보기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도 이런 추세에 영향을 받지 않을수 없는것같다.

성경이외 에도 많은 부분에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점차 디지털화 되가고 있다. 아마 요즘 예배에 projector 와 power point 나 keynote 를 사용한 presentation 을 쓰지 않는 교회는 정말 보기 드물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목사님들은 동영상을 설교의 일부분 으로 사용하시기도 하신다. 인터넷 예배는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을것이다. 인터넷으로 다른교회의 목사님 설교를 안들어본 사람은 아마 굉장히 드물것이라고 생각한다. 찬양에도 많은 부분 최첨단의 기계들이 사용된다. 예전에는 오직 오르간 하나로만 반주가 이루어졌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키보드, 전자기타, 동영상 등등  여러 방송장비 와 악기들이 사용된다. 교회 홈페이지 이외에도 많은 교회들이 Facebook page 를 따로 만들고 있으며, 많은 목사님 들은 이미 Twitter 를 사용하여 성경말씀도 전하고 여러 메세지를 전파한다. 정말 Early adoptor 교회들은 예배를 드리는 동안 성도들이 그날 말씀과 설교에 대하여 Twitter 를 올릴수 있게해서 곧바로 교회 화면에서 보여주는 교회도 있다고 들었다. 헌금 또한 미리 신용카드로 매주 얼마의 금액이 결제 될수있도록 해주는 교회도 늘고있는 추세라고 한다.

그럼 과연 이 소위 말하는 E-Worship, 즉 디저털예배 는 우리에게 궁국적으로 좋은 영향을 줄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는거 같다.  E-Worship 이 우리에게 주는 장점과 단점을 몇가지 이야기 해보자.

E-Worship 의 장점:
  • 여러면에서 편리함 을 준다.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세대가 여러 방법으로 편리하게 예배에 참여할수 있다.
  • 3D 의 예배를 드릴수 있다. 예전 예배 방법보다 더 다양한 방법으로 예배를 드릴수 있기때문에 예배가 더 효과적이 될수도 있고 사람들의 집중력을 높일수 있으며 무엇보다 사람들의 감수성과 이성을 더 만족시킬수 있다.
E-Worship 의 단점:
  • 편리하다. 편리하기 때문에 예배에 임하는 경건한 자세와 마음가짐 이 아닌 헤이한 자세와 마음가짐을 갖기가 쉽다.
  • 예배가 너무 하나의 program 처럼 되버릴 위험이 있다. 사람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경배드리길 힘쓰는게 아닌, 그 반대로 예배가 사람을 끌어들여야 하는 방향으로 변하게 될 위험이 있다. 

이외에도 더 많은 장점과 단점이 있을것이다. 그러나 E-Worship 의 가장 큰 장점은 분명 편리함 과 효율성 일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우리의 발목을 잡을수 있지 않을가 라는 걱정이 되는것은 괸한 우려일까? 성경은 예배는 진정과 신령으로 드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예배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는 주님앞에 경검함과 겸손함 이 되어야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 예배는 예배의 주체 되시는 주님께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예배의 주체는 결코 성도들이 아닌것은 분명한것이다. 그러나 E-Worship 이 주는 장점들은 예배의 본질을 위한것이라기 보다는 성도들의 편리함을 위한것같다. E-Worship 의 장점들 자체가 나쁜것은 아니겠지만 조심하지 않으면 예배의 원래 본질을 떠나 하나의 program 처럼, 우리의 편리함과 우리의 감수성과 이성의 자극만을 추구하는 예배가 될수도 있다는 것은 타당한 우려라고 생각한다.  현대문명의 발전을 최대한 이용하되, 예배는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우리를 만족시키기위함이 아니라 경배받기에 합당하신 주님께 드리는 것임을 항상 상기해야겠다!

September 19, 2011

단기선교 To The 일본, 오사카!!! (3편)


자전거타고 노방전도 가는길
나는 영어캠프 이외에도 오사카 요한교회 청년들과 같이 노방전도 또한 같이 하였다. 정말 도전이 많이 됬었던것은 오사카 요한교회는 교회 전체가 매주 토요일날 노방전도를 나간다는 것이었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미국에서만 교회를 다녔던 나는 정말 나의 생각의 지경이 넓어지는걸 느꼈다. 일본에서 노방전도를 직접해보니 일본과 뉴욕은 확실히 많은 차이가 있었다. 뉴욕은 사람들이 교회가 뭐하는곳인지도 알고 복음도 들어봤지만 사람들이 복음을 거부하는 곳이 뉴욕이라면 일본은 사람들이 교회가 뭐하는곳인지도 몰르고 복음도 못들어본곳이었다. 그래서 일본사람들에겐 교회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슬람사원 이나 힌두사원 만큼이나 이질감이 강한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본에가서 직접 전도를 해보니 일본에 대해 희망적으로 바뀌었다. 복음의 황무지이긴 하지만 복음이 일단 전파되기만 하면 엄청난 부흥이 일어날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본분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착하고 순진하며(성문화를 제외하곤) 예절이 바르다. 뉴욕은 전도할때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차갑고 공격적이라서 전도할때마다 두렵고 상처를 많이 받는다. 한국도 요즘은 마찬가지인거 같다. 그러나 일본은 전도를 하면 일단 사람들이 친절하게 받아주고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다. 복음을 실제로 받아들이는건 또다른 문제이지만 일단 전도하는 사람들의 기를 죽이지는 않는다. 거기에다가 한류의 열풍으로 한국사람들에 대한 이미지가 굉장히 좋으며 한국사람들에게 일본어는 쉽게 배울수 있는 언어이다. 한국사람들이 일본의 영혼들을 살리는데 크게 쓰임받을수 있는 potential 넘치고 넘치는것을 볼수 있었다.  

요한교회 형제들과 사진
내가 일본 단기선교를 가서 가장 크게 도전을 받았던 것은 바로 일본의 요한교회 청년들의 헌신이었다. 뉴욕과는 달리 일본은 학비가 한국정도의 수준에 유학생들이 합법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할수있기때문에 집안이 부유하지 않은 유학생들이 많은곳이 일본이었다. 내가 갔었던 일본의 요한교회의 청년들은 아르바이트를 통해 학비와 생활비를 버는 유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르바이트를 3-4, 많게는 5개나 하는 청년도 보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공부도 하고 교회의 모든일과 스케줄을 감당하는것이었다요한교회는 사람수가 아주 많은곳이 아니기때문에 많은 리더들이 여러 사역을 동시에 담당하고 있었다. 요한교회는 순장을 할려면 2년의 훈련을 받은후에 될수 있다. 그들은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노방전도를 나가며, 순원중에  한명이라도 순모임에 안나오면 다음날 곧바로 순모임에 안나온 순원의 집으로 신방을 간다. 외에도 한명의 영혼이라도 양육하고 제자화 시키기위해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한다. 요한교회는 매주 금요일 금요철야예배가 있는데 9시에 시작해서 새벽 1시반에 끝난다. 일요일은 순장들과 리더들은 교회에 아침부터 나와서 새벽 1 이후에나 집에 들어온다 지금 Full time 사역자가 아니라 일반 유학생들의 이야기를 하는것이다 (요한교회의 Full time 사역자들은 열심히 하였다). 그래서 잠을 하루에 5시간 이상 자는 순장은 거의 없다. 대부분이 평균 하루 4시간 정도의 숙면을 취한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만일 교회일 아르바이트, 혹은 학교일 겹치면, 교회일을 먼저 한다. 아르바이트에서 해고를 당하는 일이 있어도 교회일을 먼저 한다. 엄청난 헌신이다. 정말 놀랄수밖에 없었다

나는 일본에서의 일주일간의 단기선교를 마친후에 한국에서 34일 동안 머물렀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갈때 까지도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보호하심은 끝나지 않았었다.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기위해 인청공항 으로 가는 택시를 타고 인청공항으로 가는 고속도로에 들어섰을때, 택시 뒷자석에 탔던 나는 너무나 졸려서 나도 모르게 졸고있었다. 그런데 꿈에서 나의 다리를 누군가 손으로 만지며 깨우는 것이었다. 꿈에서 몸이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하게 보였다. 그래서 나는 졸음에서 깨어 일어났다. 그러면서 도데체 무슨일일까, 단순한 꿈인가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단순한 꿈이기엔 나를 깨웠던 손의 감촉이 너무나 선명했다. 그렇게 신기해하며 앞을 보았는데, 택시기사님 께서 졸고 계신게 아닌가? 택시는 이미 차선을 이탈하여 옆차선으로 들어간 상태였다. 나는 얼릉 택시기사님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다행히도 옆에 아무 차도 없었기 때문에 사고는 나지 않았다. 운전기사님이 말씀 하시길 점심을 너무 많이 드신데다 고속도로의 풍경이 변화가 없이 일정하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졸은거 같다고 하셨다. 결국 우리는 무사히 인천공항에 도착할수 있었다. 만일 주님의 손이 나를 졸음에서 깨우시지 않았다면 나도 졸고 운전기사분도 졸고, 아주 큰일날뻔 하였다

일본은 분명 가깝고도 먼나라 이다. 비슷하지만 너무 틀리다. 그런 일본 에서 하나님이 한국사람들을 통하여 어떻게 역사하시고 계시는지 목격할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 일본을 위해 기도해주시라고 도전하고 싶다.하나님이 일본기도팀을 통하여서, 일본 요한교회를 통하여서, 그리고 일본을 위해 기도하는 여러사람들을 통하여서 일본을 육적으로 영적으로 회복시키실것을 믿어의심치 않는다.

단기선교 To The 일본, 오사카!!! (2편)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일본 오사카 로 가기위해 JFK 에 도착했다. 7월 29일 새벽 1시에 떠나는 대한항공 비행기편이었다. 내 생일날 첫 단기선교를 떠나는 비행기를 타다니, 뭔가 감회가 새로우면서도 주님의 놀라운 타이밍이 있는거 같아 놀라왔다. 또한 내 생일을 주님께 이렇게 드릴수있다는 생각도 왠지 스스로를 대견하게 만드는 교만감(?) 비슷한 기쁨도 있었다. 그러나 역시 혼자 있다는건 외로왔다. 19시간이라는 오사카 까지의 긴 비행기간을 혼자 가야한다는게, 그것도 내 30번째 생일날.. 그런 여런저런 혼자 생각을 하며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보고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교회의 연변단기선교팀의 3명, 성진이형, 민주, 선영이였다. 다른 연변단기선교팀들 보다 먼저 연변으로 가기위해 온 이들이 정말 놀랍게도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가는것이었다. 이들은 나와 같이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 으로 도착한후 인천공항 에서 연변으로 가는 일정이었다. 같은 비행기였지만 나도, 그쪽도, 서로가 같은 비행기였다는걸 전혀 몰랐던것이었다. 놀란 우리는 너무 잘되었다고 말을한후 좌석을 조절해서 같이 앉을수 있도록 하자고 했다. 그러나 정말 놀랍게도, 내 좌석은 34F 였는데 이들의 좌석은 34A, 34B, 그리고 34C 였던것이다. 그래서 나만 34D 에 앉으시는 분과 자리를 바꾸기만 하면 되는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마음씨가 좋으신분이 34D 에 있으셔서 순조롭게 자리를 바꿀수 있게 해주세요" 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드디오 비행기 탑승이 시작되고 나는 일단 내 좌석으로 간후 자리를 바꿀려고 했다. 그러나 왠일인가? 34D 에 앉으시는 분이 착각하여 내 자리인 34F 에 앉아계신게 아닌가? 나는 그분께 그분이 앉아계신곳이 내 자리임을 말씀드렸고 또한 그곳에 계속 앉아계시라고 내가 그분 자리에 대신 앉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분은 나에게 미안하다며 고맙다고 인사하셨다. 그래서 우리 넷은 나란히 34A, 34B, 34C, 그리고 34D 에 앉아서 가게되었다. 너무나 신기했던지 민주가 나에게 "오빠, 오빠가 자리 조절했어요?" 라고 물어보았다. 나는 주님의 놀라우신 역사하심이라고 진정되지 않은 흥분된 말로 이야기 해주었다. 그렇게 한국 인천공항 까지 의 여정은 외롭지않은 즐거운 여정이었고, 또한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오사카로 가는 비행기를 탈때까지 이들 셋과 함께 아침도 먹고 커피도 같이 마시면서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 될수있었다. 오사카행 비행기를 탈때에는 이들이 내가 비행기를 타러들어갈때 손을 흔들며 잘갔다오라고 격려도 해주었다. 내가 정말 기대 하지 못했던, 하나님께 너무 감사한 시간이었다.

도착한 오사카 공항은 생각보다 초라하였다. 역시 인천공항만한 곳은 업구나 라고 생각하며 희경누나 를 기다리고 있었다. 희경누나가 바로 나를 오사카 요한교회의 영어캠프에 소개시켜준 장본인 이시다. 희경누나는 부산에서 대한한공 비행기편으로 출발하셔서 나보다 한시간후에 도착하시는 일정이셨다. 그래서 내가 누나를 기다렸다가 같이 고속버스를 타고 오사카로 시내로 가기로 되어있었다. 서로 실제로 만나본적이 없고 오직 페이스북으로만 얼굴을 봤기때문에 혹시나 누나를 못알아볼까봐 나오는 사람들을 신경을 쓰며 처다보고 있는데 어느 중년의 남자분이 나에게 말씀을 걸어오셨다. "누구 기다리세요?" 라고 말씀을 시작하신 이분은, 내가 한국사람인지 어떻게 아셨는지 한국말로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시기 시작하셨다. 한국에서 어떤 운송업체를 하시는 이분은 입국심사 도장이 가득찍힌 본인의 여권을 보여주시면서 일본을 일주일에 2~3번 이상 왕복하신다고 하셨다. 내가 단기선교때문에 뉴욕에서 이곳까지 왔다고 말씀드리자 본인도 한 교회의 집사님이시라면서 뉴욕도 가끔가신다고 연락하라고 하시며 명함을 한장 주셨다. 하이튼 난 처음가본 일본의 오사카 공항에서 만난 이 한국분 집사님과 한시간 이상 수다(?)를 떨며, 누나를 기다리는 시간이 심심하지 않을수 있었다. 한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그 집사님도 본인의 일을 보러 가신후 조금후에 희경누나가 도착하였다. 누나와 나는 버스표를 끊고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서 오사카 시내로 출발하였다.

일본 오사카 요한교회
오사카의 첫느낌은, 굉장히 습하다 였다. 너무 땀이났다. 조절이 안됬다. 오사카의 시내는 서울과 큰 차이가 없어보였다. 영어간판이 서울만큼 많지가 않다는것과 곳곳에 "빠칭코" 가게가 있다는것, 그리고 일본남자 들이 확실히 머리가 다들 길다는것 이외에는 서울과 많은 차이를 느낄수 없었다. 아, 확실히 서울보다 거리는 깨끗했던거 같다. 오사카시내이 고속버스정류장에서 우리를 마중나온 오사카 요한교회의 일본분 전도사님과 한국분 간사님을 만나서 그분들의 차를 타고 오사카 요한교회로 향했다. 오사카 요한교회의 건물은 4층짜리 조그마한 건물이었다. 우리나라 교회들 처럼 화려하고 큰 건물은 절대아니었지만 기독교인이 거의 없는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그래도 교회의 건물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오사카 요한교회분들의 말에 의하면 처음에는 교회건물이 없었는데 유학생들의 헌금이 모아져서 교회의 건물을 건출하실수 있었다고 자랑스럽게 말씀해주셨다. 처음에 도착해서 나와 희경누나는 영어캠프를 담당하시는 최미선 순장님과 그리고 오사카 요한교회의 담임목사님의 사모님(그곳에서는 전도사님이라고 불리셨다. 실제로 전도사님 이신거 같았다) 과 만났다. 여러인사를 나눈후 그분들은 우리에게 영어캠프의 목적과 취지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다. 그분들에 의하면 일본의 교육시스템은 많은 문제가 있으시다고 했다. 일본은 젊은이들이 열정도 없고 투지도 없고 전체적으로 일본의 교육열이 굉장히 낮다고 말씀해주셨다. 특별히 대학교를 가서 전문성을 키우지 앉아도 소위말하는 아르바이트 만으로도 먹고살수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며, 어떤 학생들은 등교거부 까지도 한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런 영향은 일본에 살고계신 한국분들의 자녀들에게도 전해져서 일본에서 사역하고 계신 사역자분들이나 성도들의 자녀분들이 받는 교육수준이 한국에서 살고있는 같은나이의 아이들보다 훨씬 낮으시다고 하시면서 그것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시다고 눈물을 글썽거리셨다. 그래서 그런 아이들에게 영어의 자신감을 심어주시기 위해서 영어캠프를 시작하셨다고 말씀해주셨다. 이번 영어캠프가 3년째 이며 첫해와 둘째해 의 영어캠프는 경험도 없고 자원도 너무 부족해 정말 작은규모로 엉성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번해 영어캠프를 하는문제를 놓고 많은 고민을 하셔다고 한다. 그래도 기도중에 하시기로 결정하시고 진행하셨는데, 안타깝게도 영어를 하실줄 아는 자원자들을 구하는게 너무 힘드셨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생각되는게, 일본에 있던 한국분들도 한국으로 돌아가는 이 상황에 조그만 교회에서 하는 영어캠프를 하기위해 미국에서 이곳 오사카 까지 올 사람을 구하는게 힘들었을것은 당연했을꺼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나를 비롯해 하나둘씩 갑작스런 지원자들이 모여들게 되었고, 그래서 나와 희경누나를 제외하고도 3명의 원어민들(Christian, Megan, 그리고 Tim 이라는 두명의 미국분과 한명의 뉴질랜드 분)이 참여하게 되었다고 말씀해주셨다.

일본 오사카서의 단기선교는 첫날부터 굉장히 힘들었다. 나는 영어캠프가 육체적으로 힘들꺼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왠일인가..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다. 준비해야 할것이 너무나 많았는데 일손은 너무나 부족한것이었다. 나와 희경누나를 제외한 다른 3명의 원어민 선생님들은 영어캠프가 시작하는 8월3~4일 에만 오셔서 도와주시기로 되어있었다. 그래서 영어캠프를 준비하는 과정을 나와 희경누나 그리고 영어캠프 준비를 도와주시는 몇명의 자매님들이 다 감당해야만 했다. 엄살을 떠는것이 아니라 정말 준비해야 할것이 많았다. 여러가지 프로그램 준비부터 아이들을 가르킬 율동, 그리고 여러가지 소품들, 거기다 영어캠프가 있기전까지 중간 중간에 있던 영어특강 까지... 매일 아침 9시 정도에 나와 교회로 와서 밤 12시가 되서야 내가 머물던 숙소에 들어갔다. 영어캠프 물론이고 주일학교 에서 섬겨본 경험도 없던 나는 많은 걱정과 어려움이 있었던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로 처음에는 어색했던 아이들과도 점차 친해지게 되었고, 여러곳 에서 원어민 선생님들도  나중에 참여하시게되서 영어캠프 무사히 성공리에 마칠수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나 어수선 하던 아이들도 영어캠프 당일날 에는 침착하게 모든 프로그램을 따라주어서 기뻤다. 영어캠프에 참여한 아이들이 이번 캠프를 통하여서 영어에 더 자신감을 얻어서, 성인으로 으로 성장했을때 일본 뿐만이 아니라 온 열방에 복음을 전파할수 있는 주님의 훌륭한 일꾼으로 성장하길 기도하게되었다.

July 28, 2011

단기선교 To The 일본, 오사카!!!

언제부터 였을까? 일본, 일본인 에 대한 많은 악감정 이 있던 내가 일본을 향한 마음이 생긴것이? 한국 에서 부터 나 나와 나의 친구 들은 일본을 많이 싫어했었다. 일본 이 우리나라 에게 행한 많은 역사적 죄들 때문에 난 일본이 무척 싫었으며 특히 일본 사람들에 대한 안좋은 많은 편견이 있었다. 그 미움과 편견은 내가 미국에 온 후로도 계속 이어져서 미국에서 만난 많은 일본인 들을 참 싫어했었다. 항상 일본 보다는 한국이 낮고 특히 외모 부분에서 일본 사람 보다 한국 사람들이 월등 우수하다고 생각했으며 그렇게 주장 했었다. 일본 남자 애들이랑 어울려 다니는 한국 여자애들 한테는 심하게 뭐라고 하기도 해서 관계가 흐트러졌던 자매들도 몇명 있었던거 같다. 여하간 난 분명이 일본을 싫어했었다. 굉장히.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하나님을 만난 후에 몇년이 흘러, 나도 단기선교 를 가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됬다. 결혼하면 가기 힘들다고 하던데, 아직 싱글일때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게되었다. 어느 나라를 갈까? 고민 해봤다. 이상하게도 이스라엘 아니면 일본 으로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 당시 한창 "Back To The Israel" 이라는 운동이 한창 시작되었던 때라 이스라엘 을 생각했던건 이해가 갔다. 하지만 일본에 대한 마음은 왜 들었을까? 일본이 같은 아시아 국가 라서 그랬을까? 일본은 위험한 지역이 아니어서 그랬을까?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일본이 어떤 곳인지 한번 보고 싶어서 그랬을까? 어찌하엿든 이스라엘 아니면 일본 이라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나중에 이스라엘 은 가지 말아야 겠다고 다시 생각하게 됬다. "Back To The Israel" 운동 이 신학적 으로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 으로 결정 하고 기도 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일본으로 단기선교 의 길을 열어 주시라고. 작년 겨울 부터 그런 기도를 시작 했던거 같다. 그러다가 우연히 쿄토 에 거주하시는 한국인 유학생 자매님을 알게되고, 그래서 일본 중에서도 교토 로 선교를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그렇게 계속 기도를 했다.

그러나 일본으로 단기 선교 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특히 교툐 지역은 더더욱 그랬다. 일본에서 굉장히 먼 나라인 이 미국 땅에서 살다보니 일본으로 단기선교 가는 교회 들을 찾을수가 없었다. 대부분 의 교회 들이 미국, 남미, 아프리카 로 선교를 갔다. 하다못해 한국으로도 선교를 가는 선교팀도 있었지만 일본으로 가는 기회는 찾을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일본에 지진이 나고 방사능 유출 사건이 터지자 더더욱 일본으로 선교 가는 기회를 찾을수 없게되었다. 이때쯤 에는 나도 포기하고 더 이상 일본 단기선교 가는것에 관해서 기도를 하지 않았다. 기회도 없고 방사능 유출 때문에 일본을 간다는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른 선교를 찾아봐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는 참 오묘하다. 갑자기 일본으로의 단기선교의 기회를 열어주셨기 때문이다. 나와 친한 형이 아시는 자매님이 한국 부산에 계시는데 일본 오사카 로 단기 선교를 가신다는 소식을 그 형이 듣고 나와 연결 시켜주셔서 나도 가게 되었다. 너무 급작스럽게 기회가 생겨서 선교날짜 3주안에 기도하고 결정하고 휴가 내고 비행기 표 를 구입하고 등등 모든 준비과정을 마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택시 타고 공항 으로 출발 하기전에 이 글을 쓴다. 나는 7월 29일 부터 8월6일 까지 일본 오사카 에 있는 오사카 요한 교회 에서 영어캠프 사역을 하게 된다. 이곳 뉴욕에서 같이 가는 팀도 없다. 혼자 가게 된다. 그곳에 가서 오사카 요한 교회 분들과 join 하여 같이 영어캠프 사역을 하게 된다. 오사카 는 교툐 와 열차로 50분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다고 한다. 내가 교토 지역으로 단기선교 를 가기를 기도 했는데 들어주신 것이다. 무엇보다, 일본 으로 떠나는 이 단기선교 의 날짜 가 바로 내 생일이다. 7월 29일. 참 하나님의 때는 재밌고 오묘한거 같다. 내가 내 생일 을 단기선교 가는 비행기에서 맞이할줄 이야. 생각도 못했다. 그래서 더 더욱 기대 된다. 급작스럽게 결정된 일이라 준비가 너무 모자라지만, 그래도 모자란 나 라도 써주시는 하나님께 너무 감사드린다.

April 3, 2011

인터콥 의 침투

  기독교 뉴스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요즘 많이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인터콥 에 대해서 들어보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인터콥 과 같이 선교를 해보셨거나 훈련을 받으 셨던 경험이 있을수도 있겠다. 인터콥은 그들의 웹사이트에 그들은 "로잔언약에 기초한 신앙고백을 가지고 사역하는 초교파적인 복음주의 선교단체" 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많은 목사님 들과 신학자 분들은 인터콥 이 하고있는 사역들과 특히 인터콥의 대표인 최바울 선교사님의 신학사상 에 대해 많은 문제점 들을 지적하고 있다. 여러 문제점 들이 있으나 그중에 대표적으로 지적당하는 문제점들은 이러하다:

  • 베뢰아 귀신주의
  • 너무 치우친 세대주의
  • 신사도운동 에서 유래된 Back to the Jerusalem 운동.
  • 너무 공격적인 전도
  • 비젼스쿨

인터콥 이 지적당하고 있는 문제점들의 자세한 내용은 이곳 에서 많은 정보를 찾을수 있다. 바로 이렇게 controversial 한 인터콥의 비젼스쿨이 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에서 현제 실행되고 있다. 위험한 부분도 있지만 현지 선교사님 들로 부터 선교를 향한 열정과 선교지 에서의 실제 사역에 관해 많이 배울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허락된 인터콥 비젼스쿨은 아니나 다를까 결국 우리교회 에서도 일을 터트리고 말았다. 우리교회 목사님으로 부터 성경에 없는 이상한 이야기나 신학적으로 논란이 있는 이야기는 하지 않도록 주위해주시라는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인터콥의 내부 간사님중 한분이 결국은 귀신론 과 너무 치우친 세대주의 내용들을 강의 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그 강의를 들었던 많은 청년들이 혼란해 하고 불편해 하여 결국은 목사님이 위험하다고 판단하셔서 계획 되었던 인터콥 비젼스쿨 수련회 는 취소 하시고 내부간사 들도 모두 외부간사 나 선교사님 들로 교체 되었다.

 

인터콥의 대표이신 최바울 선교사님 은 최근에 본인과 인터콥의 사역과 신학사상에 지적된 문제점 에 대해 모두 인정 하시고 자문위원 들의 지도 아래 모두 개선하신다고 발표 하셨으나 우리교회 가 직접 겪어본 바로는 별다른 개선점이 없는거 같았다. 오히려 인터콥 내부간사님 들의 입장은 자기들이 기성교회 들로 부터 "핍박" 을 받고 있다고 강의 도중 말씀 하신걸로 알려졌다. 나의 개인적인 의견은 인터콥은 확실히 위험한 신학사상을 갖고 있고 또 그런 위험한 사상들을 굉장히 믿으며 그런것들을 비젼스쿨을 통해 가르치므로 확실히 검증이 되기까지는 인터콥의 비젼스쿨 을 교회에서 실행 하는것은 너무 위험하다는 것이 나의 의견 이다.

March 4, 2011

전도의 새방향

밑에는 뉴스앤조이 에 실린 전도의 종말인가, 새로운 전도인가 이라는 글 이다.  이 글의 저자는 특히 우리나라 에서 많이 볼수 있고 미국 에서도 요즘 많이 목격 되고 있는 공격적인 전도 에 대해 비판 하면서 진정한 전도는 삶의 변화를 통해서 이루어 지는 것이며 교회 의 존재 자체가 전도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물론 뉴욕에서 거주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교회 사정을 잘 알수는 없지면 뉴스와 사람들을 통해 듣는 우리나라의 교회 소식 들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소식들만 있지는 않다.  많은 교회 들이 주님의 영광을 오히려 가리고 있으며 한국사회 에서 교회는 점점 그 진정한 힘을 잃어가고 기독교의 이미지는 점점 안좋아 지는것 같다.  

나는 저자의 모든 말에 동의 하지는 않는다.  물론 너무 공격적인 전도는 삼가야 하겠지만 (최근 많은 문제가 되고 있는 인터콥 처럼) 그렇다고 노방전도 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그러나 많은  한국교회 들이 짠맛을 잃은 소금처럼 변해가는 이때에 교회와 성도들의 삶의 변화를 통해서 전도 하라는 이 글의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 을 상당히 갖고 있는듯 하다. 

By the way, 밑에 글에 저자가 인용한 Richard J Mouw 의 무례한 기독교의 나온 글이 요즘 많은 크리스찬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거 같다.

"오늘날의 문제 중 하나는 예의 바른 사람은 종종 강한 신념이 없고,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은 예의가 없다는 점이다(<무례한 기독교>, Richard J. Mouw, 16쪽)."

 

원문 링크 :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038

 

 

전도의 종말인가, 새로운 전도인가

 

마틴 마티(Martin Marty)는 현대인의 문제 중 하나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오늘날의 문제 중 하나는 예의 바른 사람은 종종 강한 신념이 없고,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은 예의가 없다는 점이다(<무례한 기독교>, Richard J. Mouw, 16쪽)."

이 문제는 한국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 기독교의 전도를 보면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으며 자신의 신념만을 전파하려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영혼 구원이라는 강한 신념 하나로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전도의 모습은 전국 어디서든지 볼 수 있다. 비기독교인보다 더 교양이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영혼 구원의 강한 신념은 전쟁 중에 있는 나라까지 찾아가 복음을 전파하게 한다. 죽을 수도 있는 나라에 가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다니, 이러한 모습은 어떻게 봐야 할까? 기독교의 복음 전도의 모습은 이런 것뿐일까? 오늘날 사람들에게 불평과 불안을 일으키는 기독교 전도는 점차 종말을 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1. 예의 없는 한국교회 

마틴 마티의 말처럼 한국교회의 전도 방식은 신념은 강하지만 예의는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를 걷다 보면 영락없이 볼 수 있는 모습은 노방 전도자가 예의 없이 전도하는 모습이다. 

길거리 전도는 교회에서 가장 많이 하는 전도 방법이다. 길거리에서 찬양을 부르거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달하는 식의 전도 방법이 길거리 전도에 보편적인 모습이다. 서울의 중심지인 명동에 가 보자. 길거리 전도를 많이 볼 수 있다. 하나같이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고 있다. 이들을 자세히 본다면 전도하는 방법도 가지각색이다. 확성기로 찬양을 부르거나 자신들의 구호를 외치고, 커다란 깃발과 팸플릿을 들고 전도를 한다. 또 어떤 이는 빨간 십자가를 들고 다니며, 또 어떤 이는 온몸에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붙여 다니기까지 한다. 이들은 주위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과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전도를 한다. 사람들의 불평과 조롱에도 꿋꿋하게 전도를 한다.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들은 정말 강한 사명으로 나온 듯하다. 좋은 의도로 나왔다고 하지만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줄 때가 많다. 시끄러운 소리, 사람들에게 지옥에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협박, 전단지들은 휴지통에 버려지는 게 일쑤다. 가만히 보면 '복음'을 전하지만, 사람들에게 반감만 더하는 모습이다. 

2007년도에는 한국 기독교의 예의 없는 모습에 분노를 느꼈던 사건이 있었다. '아프간 피랍 사건'이다. 분당샘물교회에서 출발한 이들은 아프간이 전쟁 중임에도 불과하고 선교를 하러 들어갔다. 그들은 목숨을 복음 전도에 바치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복음으로 아프간이 변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탈레반에게 잡혀 피랍되고 만다. 피랍된 이들을 보며 대한민국 국민들은 무사 귀환을 바라는 마음과 비난의 목소리를 동시에 냈다. 2명의 사망자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무사 귀환을 했지만, 국민들은 안도하는 모습보다는 비난의 눈초리로 그들을 맞아들인다. 전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으며 국가적 손실을 줬다는 것이다. 그 후에도 국민들은 이들이 출발하기 전에 아프간 여행 자제 금지 표지판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분노했다. 그리고 돌아오고 나서도 자중의 모습보다는 아프간 피랍 관련 간증 책을 출간했다는 것을 듣고 비난을 퍼부었다. 

최근에 다시 한번 국민들의 원성을 샀던 '봉은사 땅 밟기' 사건이 있었다. 지난 2010년 10월에 '봉은사 땅 밟기'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동영상이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찬양인도자학교' 소속이라고 밝힌 이들은 봉은사에 들어가 손을 들고 기도하고 예배를 드렸다. 동영상에는 "이 땅에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건 파괴될 것이다"고 말하며, 봉은사를 향해 "헛되고 헛되다, 우상은 무너질 것이다"며 불교를 폄하하는 문구를 사용했다. 이것으로 종교와 종교 간의 관계에 긴장감을 더 했다. 이들은 무엇을 위해 타 종교까지 들어가 자신의 종교를 전했던 것일까? 

2. 공격적 선교와 전도의 원리 

한국 교회의 이러한 무례한 전도 방식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고, 또 한국교회만의 문제도 아니다. 의외로 이러한 공격적 전도 방식은 뿌리가 깊다. 알렌 크라이더(Alan Kreider)의 말에 의하면 초대교회는 오늘날처럼 전도에 열심을 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는 높은 성장률을 보였는데, 이는 신자의 삶의 변화 때문이었다고 그는 주장했다(<초대교회의 예배와 전도>, Alan Kreider, 21쪽). 

초대교회의 이러한 선교가 크게 바뀌게 된 것은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 때였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나서 교회의 선교 전략은 대폭 수정되었다. 4세기 이후 기독교가 공식적으로 인정되면서 기독교 선교는 외적으로 기독교 세계를 팽창시키는 일로 변질되었다. 라민 산네가 말하듯이 확산의 선교였다(<교회의 선교적 사명에 대한 신선한 통찰>, Darrell L. Guder, 37쪽). 중세 초기에는 라틴 기독교 문화가 점차 팽창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당시 유럽 사람들이 선교의 임무를 기독교가 비기독교 세계로 확장되는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종의 제국주의다. 

선교와 전도를 기독교 세계의 확장으로 보는 제국주의적 선교관은 18~19세기 대각성 운동 때에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신광은 목사는 <메가처치 논박>에서 대각성 운동으로 '지상명령'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생겨났다고 주장했다. 최고의 명령이라는 뜻을 가진 지상명령(至上命令)은, 대각성 운동 때 부흥사들이 "영혼을 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주님의 명령 중 가장 중요한 명령은 전도다"고 말할 때 생겨났다. 그 뒤 세계 선교 운동가들은 이를 발전시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메가처치 논박>, 신광은, 66쪽). 그런데 부흥사들과 세계 선교 운동가들이 이해하는 전도와 선교는 결국 불신자를 개종시키는 것이요, 교회가 없는 곳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말이요, 비기독교 국가를 기독교 국가로 만들겠다는 의미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의 전도와 선교관은 콘스탄티누스의 제국주의적 기독교 세계의 확장과 다르지 않다. 

문제는 이 같은 제국주의적 선교를 한국교회의 토속 신학이라고 할 수 있는 '공로신학'이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선교와 전도에 믿음과 한국의 토속적 신앙이 결합하여 또 다른 이데올로기를 낳고 만 것이다. 오직 은혜로만,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설교하는 한국교회에서는 "가톨릭교회의 공로신학으로 회귀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한국교회의 강당에서는 구원은 믿음으로 하지만, 공로를 많이 쌓아야 하늘나라에서 큰 상급을 받는다는 식으로 이 둘을 조합하여 가르치고 있다('한국교회여, 헛된 희망을 말하지 말자', <기독교 사상>, 김세윤 교수)." 

하늘나라에서 상급을 받는다는 설교는 전도와 선교에 대한 성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야기시킨다. 또 교회 성장을 위해 개신교 목사들은 샤머니즘적 축복론을 복음으로 선포하고 있다고 훌러신학대학원의 김세윤 교수는 지적했다. "종교개혁자들이 설교와 신앙이 그리스도 곧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원의 사건에 집중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러나 많은 한국교회 강단에서는 교회 성장과 부의 축복이 선포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한국의 교회에서 우리 민족의 무속 신앙에 의해 기독교 신앙이 심각한 왜곡되어 있는 것이다('한국교회여, 헛된 희망을 말하지 말자', <기독교 사상>, 김세윤 교수)."

이러한 한국교회의 제국주의적 선교 및 전도 행위는 신광은 목사가 말하는 소위 메가 처치 현상과 연결되어 있다. 전도와 선교는 기독교 세계의 확장이면서 동시에 교회의 확장과 성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사람들을 많이 불러와 교회의 크기를 키우는 것은 기독교 세계의 확대며, 동시에 하나님나라의 확장이라고 믿는 것이다. 이러한 신념 때문에 오늘도 전도인들은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예의조차 갖추지 않은 채 전도를 해 대고 있는 것이다. 

3. 변화하고 있는 선교 개념 

한국교회는 전 세계 어느 교회보다 전도와 선교에 열심이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기독교에 대한 인식은 악화되고 있다. 지금의 전도 방식과 선교의 모습은 지성인들에게는 잘 먹히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반감만 사고 있다. 그렇다면 전도와 선교를 하지 말 것인가? 그럴 수 없다. 예수께서는 분명 우리에게 땅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전도하고, 어떻게 선교할 것인가? 

최근 전도와 선교의 개념이 바뀌고 있는 추세다. 영역을 넓혀 가는 것이 선교가 아닌 교회 그 존재 자체가 선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내심받은 교회의 본질이 선교(missio dei)라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근거로 교회를 정의하는 것이다. 성부는 성자를 세상에 보냈으며, 성부와 성자는 성령을 세상에 보내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요 17:18)",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그러니까 하나님은 교회를 본질상 선교적으로 부르신 것이라 할 수 있다. 데이비드 보쉬(David Bosch)는 "교회는 보내는 자가 아닌, 보냄을 받는 자이다. 교회의 선교는 그 존재에 이차적인 것이 아니다. 교회의 본질은 파송을 받고, 선교를 위해 세워지는 데 있다"고 말한다( <변화하고 있는 선교>, David Bosch, 553쪽). 

이러한 선교의 변화를 주었던 인물은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이었다. 그는 인도에서 35년 동안 선교사 생활을 마치고 자신의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돌아온 그는 인도 빈민촌에서 봤었던 희망을 기독교 국가라는 영국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서구의 재복음화를 주장하며, 스스로 선교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을 잃어버리면서 교회의 본질을 잃었다고 지적했다('교회론의 변천을 통해 본 선교적 교회론 이해', <KJFM>, 이현모). 

새로운 선교의 중점은 교회 자체가 선교의 본질이며, 선교지임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어 하나님의 선교를 하는 교회의 주된 목적은 영역 확대가 아닌,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대표하고, 하나님을 지시하고, 현현의 성탄절을 끊임없이 기념하면서 세상의 눈앞에 성자 하나님을 세움으로써 하나님의 선교에 봉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변화하고 있는 선교>, David Bosch, 579쪽).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하나님의 선교 목적은 무엇인가? 침례신학대학교의 이현모 교수는 보수적 교회가 회심, 개종, 교회 개척을 선교 목적으로 제시했으며, 그는 이를 축소주의라고 비판했다('교회론의 변천을 통해 본 선교적 교회론 이해', <KJFM>, 이현모). 또 데이비드 보쉬는 교회 개척이 선교의 목적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변화하고 있는 선교>, David Bosch, 579쪽). 그렇다면 무엇이 하나님의 선교 목적일까? 

그것은 하나님나라의 성취이다.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질서를 전파하는 것이 선교이며, 교회의 본질이다. 세상과 다른 질서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것이 복음이 말하는 구원이며 자유함이다.

"복음이 단지 한순간 회개하고 구원을 받은 것만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복음은 오히려 매일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고 그분의 선교에 동참해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봉사하는 것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교회론의 변천을 통해 본 선교적 교회론 이해', <KJFM>, 이현모)." 

4. 새로운 선교의 적용 

한국교회의 예의 없는 모습들은 결국 하나님의 나라의 성취보다는, 살만 부풀려 가는 모습이다. 오래전부터 나타난 제국주의적인 모습을 버리고 살 수는 없을까? 콘스탄티누스 이전의 초대교회에서는 전도와 선교에 힘과 열정을 다하지 않았다. 알렌 크라이더의 <초대교회의 예배와 전도>에서 초대교회의 모습은 지금 현재의 전도와는 상이한 모습이다.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는 구별된 사람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 그리스도안의 자유와 올바른 삶의 길을 다른 사람에게 발견하게 해 주었다(<초대교회의 예배와 전도>, Alan Kreider, 34쪽). 이것은 강압적인 전도도 아니고 공격적이지도 않다. 순수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하나님나라에 대한 호기심인 것이다. '새로운 백성이자 새로운 삶의 방식'이었다. 그들은 주를 따르는 삶이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는 데 자신들을 필요한 도구로 사용하신다고 믿고 있었다(<초대교회의 예배와 전도>, Alan Kreider, 38쪽). 초대교회의 모습에는 교회를 부풀리기 위한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제국주의적인 모습보다는 삶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이러한 초대교회의 뜻을 따라 500년 동안 연구하고 실험했던 한 기독교회가 있다. 아나뱁티스트들이다. 이들은 제자도를 따르며 세상의 통치 질서를 거부하며 살았다. 유아세례를 거부함으로 로마제국의 기독교 제국주의를 반대했으며, 자발적인 신앙을 주장했다. 아나뱁티스트들에게 신앙이란 '따름'이었다. 믿는다는 의미는 회개와 제자도를 동시에 나타낸 통합적인 의미였다. 이들에게 전도의 최고의 전략은 '삶의 변화'였다('아나뱁티스트에게 배우자 4', <뉴스앤조이>, 신광은). 예수의 삶에 참여함으로 사람들에게 증거하였다. 참된 증거는 삶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여도, 비그리스도인에게 말로 전하는 것보다 행동으로, 삶에 나타나는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아나뱁티스트들에게는 참된 증거이기 때문이다(<외길 영성>, David Augsberger, 221쪽). 

초대교회와 아나뱁티스트들에게서 볼 수 있는 동일한 모습이 있다. 그리스도의 삶이다. 예수님이 하셨듯이 기독교인들도 그렇게 사는 것이다. 브라이언 맥레런 목사는 "위대한 사랑의 계명을 따르지 않으면서 전도 명령을 수행해 봤자 백해무익하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새로운 삶의 길, 즉 하나님과 이웃과 원수를 사랑하는 삶의 길을 배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주님이 행하신 대로 세상에서 종으로서 섬기며, 선을 행하고, 죄인들의 친구가 되는 것을 뜻한다(<외길 영성>, David Augsberger, 229쪽)"고 말했다. 

5. 결론 

필자는 <뉴스앤조이>에 올라온 기사를 읽다가 마음에 찔리는 질문이 있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출세와 안일을 추구하면서 남들에게는 천국의 영생 복락을 얻으라고 설교했으며, 스스로도 구원받은 자다운 감사와 보답의 삶을 살지 않으면서 남에게 구원의 복음을 선포했으니 그 전도와 선교에 무슨 힘이 있었겠는가( '천국에 갈 수 없는 예수쟁이들', <뉴스앤조이>, 송강호)." 

남에게 복음을 전하기 전에 내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도 그렇게 살지도 못하면서 남에게 그렇게 살기를 바라고 있던 건 아닌가?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답하고 있다.

"어찌하여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제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 7:3)." 

길거리 전도, 해외 선교, 봉은사 땅 밟기 등 기독교의 무례한 모습들은 찾아보기 쉽다. 사랑의 종교라고 말하기에는 이질적인 느낌이 들 때도 많다. 거리마다 전도하는 모습들은 자신의 신념을 믿고 남들에게 강요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강요는 이질감만 더할 뿐이다. 

이제 제국주의적인 옛 모습을 벗어 버리고 새 옷을 입을 때다. 존재 자체의 선교를 보여 주자. 교회가 전도에 힘쓰는 것이 아니라, 복음 전도를 몸으로 사는 것이다. 예수님을 몸으로 사는 것, 아나뱁티스트가 말한 그리스도의 삶의 참여를 참된 증거로 삼아 전하자. 복음 전도는 사회에 꼭 필요하다. 복음은 사람들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현대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 John Stott, 118쪽). 분명 그러한 능력이 있다. 그렇게 '살 때' 말이다. "우리의 공동체를 통해 직접 보여 주지 못한다면 우리의 메시지는 신빙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무례한 기독교>, Richard J. Mouw, 46쪽)."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마을은 숨길 수 없다.…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마 5:14~16)."


 

February 26, 2011

The Mission - Gabriel's Oboe

브라질 의 원시 미종족 을 상대로 선교를 하신 가브리엘 신부 의 이야기 를 바탕으로 한 1986년에 제작된 영화 The Mission 의 한장면 이다. 가브리엘 선교사 님이 원주민 들에게 둘러 싸이자 oboe 연주로 그들에게 호소 하는 장면 이다. 가브레일 선교사 님이 연주하는 곡은 Gabriel's oboe 라는 곡으로 Italian 작곡가 Ennio Morricone 가 작곡하였다. 내가 요즘 푹 빠죠 있는 노래 이기도 하다. 나는 yo-yo ma 가 연주한 버젼으로 듣고 있는데 참 감동을 주는 음악 인거 같다. 영화 와 같이 들으면 더 감흥이 살아나는 음악 이기도 하다.

February 15, 2011

금가루 현상 의 대한 견해



요즘 우리나라 몇몇 교회 와 기도원 에서 나오는 금가루 현상 때문에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금가루 현상 이란 예배 나 집회 중에 손 이나 얼굴 같은 몸에 금가루 가 나오고 나 하늘에서 내려오거는 현상 또한 이빨이 금이빨 로 바뀌는 현상 들을 말한다. 금가루 현상은 사실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 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 들은 빈야드(vineyard) 계열 과 신사도운동 계열의 집회 나 교회 에서 주로 나온다. 금가루 현상을 지지 하는 자들은 금가루 현상을 성령님의 역사하심 으로 본다. 그들은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 로 바꾸신 사건 (요한복음 2장) 을 근거로 들면서 이렇게 재질이 바뀌는 현상 들을 예수님도 하셨다고 말한다. 또한 출애굽기 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신 것을 근거로 들기도 한다. 하지만 성경 어디에서도 성령님의 임재의 결과로 금가루 를 하나님이 내리신다는 직접적인 근거는 찾아볼수 없다. 오히려 나는 그 반대 의 경우 를 성경 에서 찾을수 있었다. 즉 성령의 임재가 아닌 우상숭배 와 배교 의 행위들이 충만 했을때 금가루 가 등장 한것을 출애굽기 에서 찾을수 있었다(금가루 현상을 조사하기 위해 일부로 찾아본것은 아니고 평소 하던데로 성경통독 을 하다가 발견하게 되었다).

출애굽기 32:1~20

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3.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5.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8.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10.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11.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12.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13.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15. 모세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두 증거판이 그의 손에 있고 그 판의 양면 이쪽 저쪽에 글자가 있으니
 
 
16. 그 판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더라
17. 여호수아가 백성들의 요란한 소리를 듣고 모세에게 말하되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나이다
18. 모세가 이르되 이는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도 아니라 내가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 하고
19. 진에 가까이 이르러 그 송아지와 그 춤 추는 것들을 보고 크게 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20. 모세가 그들이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게 하니라


즉 모세가 십계명 을 하나님께 받는동안 아론 과 이스라엘 민족이 금송아지 를 만들어 우상숭배를 하자 모세가 그 금송아지를 가루를 만들어 이스라엘 민족에게 마시게 하는 장면이다. 나는 요즘 일어나는 금가루 현상들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들의 첫 우상숭배 였던 이 금송아지를 갈아서 만든 금가루 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즉 이 금가루 들은 우상숭배 와 배교 를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생각이며 신학적으로 검증받은것 은 아니다. 하지만 확실 하게 믿는것은 이런 금가루 현상 들로 절대 믿음이 생긴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믿음은 오직 말씀을 들음으로써 생긴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눈에 보이는 기이한 현상 들에 의존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성경말씀에 뿌리를 깊게 둔 믿음을 가지도록 해야겠다.

February 12, 2011

득보잡 이단 과의 만남

오늘 오후에 NYU 근처에 갈 일이 있어 그 곳에 있는 Bobst Library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곳에는 몇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찬양을 하며 전도를 하고 있었다. 물론 나는 그들을 관심있게 지켜 보았다. 나의 처음 반응 은 역시 주님의 전도의 손길은 끊이지 않았구나 였다. 이미 NYU 에서 전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음에 기뻐했으며 그들과 이야기 하고 교류 하고 싶은 마음 에 들뜨기 시작 했다. 그러나 서두르지 않고 나는 먼저 앞에 있는 스타벅스 에 들어가서 Grande Latte 를 하나 시켜서 손에 들고 나와 그 들에게 향하여 걸어갔다.

그곳 에서 찬양과 전도 하는 사람들의 수는 총 5명 이었는데 3명의 자매들은 찬양을 하고 있었고 남자 백인 한명과 흑인 한명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조그만 카드를 전하며 전도를 하고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다가가자 전도하던 흑인이 나에게 카드를 전해주었다. 그 카드에는 그들이 일요일 과 금요일 에 모이는 시간 과 장소 가 적혀 있었다. 내가 멈처서서 그 카드를 유심히 처다보자 그 흑인은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였다. 그는 나에게 예수님을 믿느냐고 물어봤다. 나는 벌써 믿는다고 말해주었고 다니는 교회 가 있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문득 이들은 어느 한 교회 에서 나와서 전도 하는건지 아니면 교회 와 상관 없이 몇몇 NYU 학생 들이 모여서 전도 하는건지 궁굼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어느 교회 에서 나왔냐고 물어보왔다. 그러자 그는 자기 들이 일요일 날 모이는 장소는이십 몇가 근처에 있는 YMCA 라고 말해주었다. 음... YMCA? YMCA 는 예배 드리는 교회 는 아닌데.. 혹시 교회 건물이 없어서 YMCA 에서 장소를 일요일 에만 장소를 대여 하여 예배를 드리나? 나는 교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Dan 이라는 이름의 그 흑인 은 그 질문에 왠지 당황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교회 는 ecclesia 즉 믿는 사람들의 모임 이라고 성경에 나와있다며 동문서답 을 하기 시작 하였다. "I am sorry, what is the name of your church?" 나는 다시 물어봤다. 그는 다시 ecciesia... 라고 말하기 시작 하였다. 나는 다시 물어봤다. "I am sorry but I asked you what the name of your church is. But you keep mentioning ecciesia.. is that the name of your church?" 그는 결국 자기 교회는 이름이 없다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뭔가 이상하다. 이름이 없는 교회 라니? 말이 되는가? 나는 그래서 목사님의 성함이 무엇 이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그는 다시 당황하며 그런것은 왜 물어보냐고 그런것이 무엇이 중요하냐며 나에게 반문 하기 시작 하였다. 나는 역시... 이상한 집단 이구나.. 라고 생각 하며 실망 하고 그냥 갈려고 하였다. 그러나 Dan 은 오히려 더 열정적으로 일반 교회 를 다니는 것은 단순한 종교 활동 이며 진정으로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받고 그대로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나에게 말하며 너는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포기 했냐고 이상한 질문들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나는 그와 15분 정도 더 이야기 하였다... 전혀 productive 하지 않은 이야기 들을 우리는 나누었다. 결국 그의 주장은 일반 교회 를 다니는 것은 단순한 종교 활동이며 성경 에서 말하는 교회 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 교회 가 아니라 ecciesia 즉 성도들의 모임 이므로 진정으로 믿는 성도들은 교회에 라는 테두리 에서 벗어나서 단순한 종교 활동이 아닌 진정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기들의 모임이 바로 그런 모임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말해주었다 "It is very dangerous not to be associated with a church. A church is very important because it is the body of Christ. Have you heard of a church called redeemers? It's a very good church. You should go to that church."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걸어 나왔다 나에게 계속 자기 주장 을 외치는 Dan 을 뒤로 하면서...

나는 다시 한번 전도사역의 중요성 을 깨달았다. 나는 다행히 이들이 이단적인 집단 인줄 알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몰랐을 확률이 높다. 분명 일반 교회 에서 전도 나온 사람들이라고 생각 했을것이다. 몇명은 그들이 금요일 날 하다는 성경공부 에도 나갔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IHOP 이나 영지주의자, 은사주의자, 경험중심 신앙주의자 들도 모자라서 "득보잡" 이단 들도 난리 치는 이 시대에 누가 사람들을 건강한 복음주의 신앙 으로 이끌어 줄것인가? 교회들은 과연 이런것 들로 부터 성도 들과 불신자 들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점검 할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January 28, 2011

배교와 이머징 교회

"무너진 믿음"의 저자 로저 오클랜드의 이머징 처치에 관한 강연 비디오 이다. 로저 오클랜드(Roger Oakland) 는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대단한 분별가 로써 아이합 이 생기기 전부터 여러 기적 과 은사를 앞세워 교회와 성도들을 배교의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많은 이단 과 비성경적 교리 들을 비판 하시고 지적 하신 분이다. 그의 책중 "이머징 교회와 신비주의" 와 새 포도주 와 바벨론 포도나무 는 읽어보시라고 권한다. 그의 책들을 통하여서 나 또한 현재 기승을 부리는 신사도운동 과 여러 소위 "New Wine" 운동 들의 뿌리 를 더 정확히 알게 되었으며 이런 신비주의 운동 의 공격이 비단 오늘 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 역사 내내 반복되어 왔던 문제 였음을 알수 있었다. (그러나 과거에 있었던 신비주의 운동 과 는 다르게 신사도운동 과 new wine 운동은 아주 빠르게 확산 되고 있으며 특히 청년들 그것도 소위 믿음이 좋다는 청년들 사이에 빠르게 펴져나가고 있다.)

밑에 동영상은 분별 블로그 인 청춘 블로그 에서 가져왔다.


Emerging church and Apostasy from jason song on Vimeo.

January 14, 2011

신사도운동 이 어떻게 교회를 파괴 시키는가?

밑에 글은 김삼 목사님 의 TLT 라는 블로그 에서 보게된 글이다. 톰 스타이프 목사님 이 "빈야드와 신사도의 가짜 부흥 운동" 책의 서문 으로 쓰신 글이다. 정말 신사도 운동 과 소위 신사도 들이 교회 들을 어떻게 무너 뜨리는지 목사님의 실제 경험을 잘 보여주신다. 너무 잘 설명 되어 있어서 혼자 보기 아까워서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자 이렇게 올린다.

[머리말-추천의 글]

나는 한 번도 영적으로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 어떤 일에 관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사역을 하면서 영적으로 가장 힘들었을 때, 바로 이런 일이 내게 벌어졌다. 내가 진리에서 그렇게 멀리 벗어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나는 늘 빈야드 교회 연합회(AVC) 지도부에서 일하는 것을 큰 특권으로 여기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다른 지도자들과 무척 가깝게 교제 했다. 우리는 함께 여러 나라를 여행하기도 하고 교회를 개척하기도 하고 사역에 대한 비전을 나누기도 했다. 우리 모임의 리더는 대단히 존경받던 인물이었으므로, 우리 모임은 곧 새로운 교파로 급성장할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우리는 그 교파의 지도부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하나님이 이 일을 위해 우리를 부르셨다고 확신했다.

미국 중서부에서 리더 회의가 일주일 동안 열렸는데, 몇 사람이 사적인 모임에 초대를 받게 되었다. 앞으로 우리 모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예언자들’을 만나는 자리라고 했다. 우리는 이미 교회 안에서 영적 은사를 열심히 사용하고 있던 터라 이 만남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우리는 방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은 후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일을 보여주실지 기다리고 있었다.

예언자들은 종말의 때에 하나님이 교회에 다섯 가지 사역, 즉 사도, 예언자, 목사, 교사, 복음 전도자의 사역을 회복시킬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 중에서 특히 예언자와 사도의 사역이 회복된다는 것에 큰 도전을 받았다. 왜냐하면 우리 교회는 이미 목사와 교사, 복음 전도자들이 활발하게 사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예언자와 사도의 사역만 회복된다면 분명 이 땅 위에 큰 부흥이 일어날 것이었다.

예언자들은 우리가 바로 이 마지막 때의 부흥을 이끌 자들로 선택 받았다고 했다. 또한 이런 마지막 때의 부흥을 이끌 기름부음 받은 자들을 찾아내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라고 했다. 하나님은 그 ‘예언자들’에게 자신들과 우리 빈야드 교회 연합이 선택된 자들이라고 말씀 하셨다고 했다.

너무나 솔깃한 말이었다. 매일 매일의 사역을 힘겹게 해 나가며 감당하지 못할까 두려움도 느끼던 우리들에게 이 말은 정말 듣고 싶던 말이었다. 우리의 애씀과 노력이 하나님의 눈에 특별하게 보였다는 말은 위로 그 자체였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실 때 놀랍고 기이한 일들이 나타나리라는 약속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첨하는 새 친구들의 말을 너무나 열심히 경청했다. 일말의 의구심도 의식 저 밖으로 밀어내 버렸다. 또 나중에 예언자들을 다시 만났을 때, 이들이 우리를 한 사람씩 데리고 나가 우리의 비밀을 상세히 드러냈을 때 의구심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는 예언자들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들이 하나님에게서 온 자들이 아닐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확하게 예언하는 모습을 보며 더욱 예언자들을 신뢰하게 되었다. 우리는 예언자들이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분명하게 확신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우리들의 어린 시절이며 개인적인 일들을 ‘들여다 볼 수’ 있겠는가?

우리는 우리의 사역이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에 한껏 부풀어 각자의 교회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후 몇 달 동안 우리 중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에서 자신이 하게 될 역할과 위치와 성공 여부에 대해 ‘개인적인 예언’을 받았다. 또한 앞으로 다가올 위대한 ‘회복’과 우리가 거기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리라는 예언을 받았다.
‘예언자들’은 사람들을 정기적으로 ‘기름부음을 받는 땅’으로 오게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즉시 짐을 꾸려 달려가 확신 가운데 예언을 받았고, 성공적으로 사역하게 되리라는 예언이 현실로 이루어질 것을 확신했다. 심지어 예언자들은 목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하며 교회 직원을 교체하기도 하고, 교회의 정책과 관행을 바꿔 버리기도 했다. 예언자들은 목사들 개개인에게 기름부음을 행하고 그들에게 치유와 사도적 약속을 주었다. 그러자 점점 목사들은 예언자들이 전화를 걸기도 전에 자기들이 먼저 예언자에게 전화를 걸어 가르침과 조언을 받고자 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이런 움직임을 불편해하며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기름부음을 받는 땅’으로 달려갔다가 뭔가 일이 실패하면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또 어떤 목사들은 자신들이 영적 범죄를 저질렀다는 예언자들의 꿈과 예언 때문에 잘못 비난받기도 했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하기보다는 ‘점괘가 든 과자’를 믿으려는 신앙이 더 활개를 치게 되었다.

몇몇 목회자들은 이런 모임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조금 마음이 꺼려지긴 했지만, ?래도 영적인 은사가 늘 완벽한 방법으로 역사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계속 밀어붙였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풀이 다 자랄 때까지는 베지 마라”는 철학을 들이대며 계속 밀어붙였다. 즉“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다려 보자”는 심산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당분간 손을 놓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자 예언자들은 계속해서 승승장구하며 교회를 마음대로 휘둘렀다.

약 2년이 지나자 모두가 예언자가 돼 버린 것 같았다. 수백 명의 빈야드 교회 성도들이‘예언’의 은사를 받아서 지도자며 성도며 할 것 없이 부지런히 예언을 하며 다녔다. 사람들은 예언자들이 해 준 예언을 작은 노트에 적어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또 여기저기서 우후죽순 격으로 열리는 예언 집회에 떼로 몰려다녔다. 노트를 들고 몰려다니는 군중은 더 많은 예언을 들으려는 희망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녔다.

치유 사역을 하는 사람들은 세미나를 열어서 치유 기도의 공식과 방법을 가르쳤고, 몸에서 ‘열점: 연약한 부분’을 찾아내는 방법을 가르치기도 했다. 기도받는 사람의 몸에 육체적인 ‘떨림’이 일어날 때 그 의미를 해석하는 방법도 가르쳤다.
예언 집회에서 꿈과 꿈 해석이 중앙 무대를 차지하면서 사람들은 꿈을 그대로 노트에 일일이 적어서 가지고 오곤 했다. 그러면 이 꿈을 나중에 하나님의 메시지로 해석했다. 사람들은 예언의 약속들이 현실로 이루어지길 기다리며 조바심내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다림은 수포로 돌아갔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예언 행렬’이 유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많은 사람이 절박한 심정으로 목회자에게 상담을 받고자 줄을 서기 시작했다. 십 대들은 십 대에 성공하여 스타가 되리라는 예언을 받았지만 그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십 대들은 모든 것이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수많은 사람이 위대한 사역을 하게 되리라는 예언을 받았지만, 자신이 다니는 교회 목사가 그런 자신의 ‘기름부음’을 깨닫지 못하고 그 은사를‘발전시켜’주지 못하는 것에 분노하여 지도자들에게로 몰려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예언에만 치중한 나머지 점점 성경에는 무지하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기보다는 그저 ‘직통 계시’에만 의존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자신들이 받은 예언이 성취될 수 없을까 두려워하며 이 예언자에서 저 예언자로 옮겨 다녔다. 예언자의 전화번호를 하나라도 더 알고 있는 것은 마치 보물지도를 얻는 것과 같았다. 이제는 예배 시간에도 성경보다는 작은 노트를 더 소중히 여기며 붙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몸을 떨고 눈을 깜빡이는 것이 성령이 임한 증거라는 말을 듣고 그것을 흉내 내기도 했다. 그리고 사역팀이 그것이 하나님의 사인이라는 것을 눈치 채고 자신에게 달려와 손을 높이 들고 “주님, 더 임하소서!”라고 기도해 주기를 원했다. 몸을 떨고, 웃고, 울고, 눈을 씰룩거리는 것은 성도들이 지도자들과 동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한 집회에서 8천 명을 대상으로 설교하던 설교가는 목사들이 설교를 준비할 때 주석서를 보거나 원어 사전을 들척이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신 목사들은 예언을 통해 주일날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 할지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

우리 교회의 한 성도는 뭔가를 결정할 때 자신의 손이 ‘뜨거워’지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다. 이런 이상한 징조를 추구하는 현상은 바로 우리 교회에서부터 시작했다.

내가 속한 노회의 교회들은 점점 침체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복음주의가 신비주의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교회 출석률이 뚝 떨어졌다. 이유인즉, 사람들이 다른 동네에 사는 자신의 친척들을 교회에 초대하기 꺼려해서였다. 사람들은 너무나 이상한 모습으로 진행되는 예배에 사람들을 초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15년 된 우리 교회에도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이 내 잘못임을 깨달았다. ‘풀’이 이제는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너무 자라버렸다. 사역은 밑바닥을 치고, 실패가 눈앞에 있었다.

목회 초기에 나의 멘토가 되어주셨던 분이 이런 가르침을 주신 적이 있다.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확신이 서지 않거든 하나님이 이미 하신 말씀으로 돌아가라.” 바로 성경이다! 얼마나 정확한 지적인가! 나는 그동안 우리 교회에 일어나는 일들을 정당화하려고 과거의 부흥 운동과 교회 역사들을 살펴보는 데 완전히 지쳐 있었다. 목사로서 나는 내가 분명히 알 수 없는 것을 얻고자 분명히 알았던 것을 포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다시 말씀을 붙들고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때였다.

수년간 목회자로 훈련받고 가르치고 설교하면서 알게 된 것은, 교회가 살기 위해서는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 신앙을 바로잡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목자로 부름 받았으면서도 마치 끌려가는 자처럼 행동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목회는 푸른 초장은커녕 삭막한 사막 한 가운데 있었다.

많은 목회자가 자신이 목회자로서 바른 판단을 내렸는지 확신할 수 없을 때 한 차례 큰 홍역을 치르는 것을 보았다. 이런 감정적인 홍역은 가끔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은 매년 매주 주일마다 일어난다. 목회자로서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일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의 양 떼를 늑대한테서 지켜내려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새로운’ 가르침이든 교회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목회자를 통해야 한다.

나는 내가 처음 곁길로 벗어나 우리 교회에 잘못된 가르침을 허용 했던 때를 잘 기억하고 있다. 그때 나는 우리가 “너무나 오랫동안 성령의 불을 꺼 버렸으며” “지금이 바로 성령님을 교회로 되돌아올 수 있게 할 절호의 기회”라는 말을 들었다. 또한 “성령의 불을 끈” 교회의 중죄를 참회하기 위해서는 예배 때마다 “무슨 일이든 허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질서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오소서, 성령이여!”와 같은 외침이 울려 퍼지는 혼돈이 도래했다.
이런 외침은 성령이 무슨 일을 행하실까 기다리는 가운데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어떤 ‘현상’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기대감이 점점 고조되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는 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9~11)라는 말씀을 임의로 적용하며 어떤 불안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 때는 모든 것이 위로가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늘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다. 이 마법의 ‘사탄 방패’가 어디까지 막아 줄까? 약 100미터? 아니면 한 60센티미터? 사탄의 앞잡이들이 다시 공격을 시작하는 데 시간제한이 있을까?
우리 중 몇몇은 이런 속임수에 푹 빠져 있었다. 나는 죄의식을 감추려고 내가 그동안 너무 인간적인 리더십에 의존했고, 교회를 너무 통제하려 했다는 식으로 변명했다. 모든 사람이 이런 죄를 고백하며 몰려가자 나도 그들에게 슬쩍 동조했다.

성경 어디에도 마태복음 7장의 말씀을 이렇게 잘못 해석하는 것을 옹호하는 구절이 없다. 오히려 성경은(고전 14:17~19) 질서를 명한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혼돈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것은 나 스스로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나의 의무를 포기하는 것이 옳다고 믿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교회에 처음 나오는 사람들에게 분명한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고 대신 주관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나는 회개해야 했고, 다시 참 목자로 서야 했다.

아내와 나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빈야드 교회 연합 지도자 모임에 참석하려고 준비하면서 우리가 해야 할 말을 연습해 보았다. 즉, 우리 교회에 파고든 주관주의를 제거하는 것과 복음주의와 제자도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 성도들의 매일의 삶에 성경 공부를 회복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 등이었다.

우리는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빈야드 교회 연합 지도자들과 깊은 교제를 나누고 있었고, 그들을 사랑했으며, 그들을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이라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진리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었다.

모임이 계속되면서 많은 지도자가 이런 ‘예언’을 추구하는 경향이 미치는 결과가 심각하다는 데 관심을 모았다. 몇몇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실수를 고백했다. 그러자 즉각 경고가 들어왔다. ‘예언자’ 즉, ‘그들의 말이 한 번도 땅에 떨어진 적이 없는 자들이’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지금 우리가 하는 대화를 들을 것이고 그러면 분명 제재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경고였다. ‘큰형님’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이 문제를 논의하는 것도 금기시되었다.

어떤 지도자는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사역의 방향을 알려 주셨다고 말하며, 말씀을 함께 나누었다. 또 어떤 지도자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진정한 교회는 셀 교회고 따라서 모든 공적인 성경적 가르침과 복음 전도를 그만두고 소그룹 모임만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주장했다. 또 어떤 이는 ‘기사와 이적’을 통해 진정한 복음 전도가 일어나고 있으며, 사람들은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나라로 몰려들고 있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복음 전도자들을 비웃으며 예언자들의 사역을 지지했다. 또 어떤 이들은 예언자들이 집회 때 자주 사용하는 속임수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기도 했다.

결국 일주일 동안의 열띤 토론과 기도와 모임 가운데 한 사람이 전 날 밤 꾼 꿈으로 결론이 나고 있었다. 그 꿈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어떤 것도 결정하지 말고 그저 “기다려 보라”고 말씀하셨다? 했다.

실망한 나는 덴버에 있는 교회로 돌아왔다. 나는 전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절친한 친구들, 신실한 기독교인들을 향해 “교리로 말미암아 이리저리 흔들리는 사람들”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제 우리의 사역은 실패한 실험실 같아 보였다. 모든 것을 주관성에 의존한 것은 목회자로서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왜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모순되는 메시지를 ‘듣는’ 것일까?

나는 이제 분명히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나에게 돌보라고 주신 교회를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게 해야 할 때임을 말이다. 그러자 진리가 관계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내와 나는 남아 있는 성도들에게 선포했다. 우리가 만일 다시 기독교의 기본으로 돌아가, 기본을 잘 행한다면 하나님이 그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하게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성도들도 동의했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 성경 말씀을 한 구절 한 구절 가르치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한 것이 요한복음이었는데, 어떤 사람은 이렇게 반응했다. “왜 요한복음이죠? 이건 초신자였을 때 이미 읽었는데요.” 또 어떤 사람들은 내가 ‘성령 안에서’ 떨고 비트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한다고 불평했다. 4,400명이었던 교회가 사람들 이 ‘거룩한 웃음’ 집회에 참여하려고 떠나 버리면서 감소하기 시작했다. 나를 증오하는 메일이 쏟아져 들어왔다. 심지어 그 운동의 지도자는 공적으로 나를 비난하면서 하나님이 내 ‘죄’ 때문에 나를 죽이실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후에 우리가 ‘모략을 받은 해’라고 부른 그 시간들을 참고 견디자 하나님이 말씀에 신실하게 응답하시기 시작했다. 불과 몇 달 안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구원의 지식을 알고자 찾아왔다. 세례 받는 자의 숫자도 늘어났다. 사람들의 삶이 급속도로 변화하기 시작했고, 교회가 다시 건강해지기 시작했다. 하룻밤 사이에 사람들이 늘어나기도 했다. 1년도 채 안 되어 우리는 주일 예배를 세 번이나 더 드려야 했다. 현재 우리 교회는 6천 명가량 된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그리스도의 삶을 닮아 가고자 애쓰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기본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매우 간단하다(히 4:12~13; 왕하 22:8~13; 렘 15:16).


『빈야드와 신사도의 가짜 부흥 운동』과 같은 책은 반드시 출판되어야 하고 독자들은 읽어야 한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사도 바울 시대에도 바울의 사역을 막으려는 거짓 예언자들과 이교도들과 율법주의자들은 교회 안에 잘못된 교리를 심어 놓으려 애썼다. 몇 달씩 집을 떠나, 열기와 먼지 속에서 말을 타고 혹은 걸어서 먼 거리를 여행하고, 또 힘들여 성경을 하나하나 베껴 쓰는 일을 한 것은 바로 거짓 교리가 전파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오늘날은 이상하게도 거짓 교리가 너무나 철저하고 신속하게 파고든다. 성경적으로 바로잡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급박한 때다. 15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교회는 요한 테첼이라는 세속적인 사제의 계책에 말려들어 오염되어 있었다. 테첼은 사람들을 속여 형벌을 면하려면 면죄부를 사야 한다고 현혹했다. 분노한 마르틴 루터는 테첼이 사람들의 영적 불안감과 무지를 이용해 구원의 중재자로 자처하는 것을 반박하며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95개조 항목의 반박문을 붙였다. 아마도 우리는 지금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가짜 부흥 운동이 출몰하는 어두운 시대를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이 그런 시대라면『빈야드와 신사도의 가짜 부흥 운동』, 이 책이 그 증거가 될 것이다. 이 책이 진정한 영적 은사를 사모하고, 빈야드와 신사도의 가짜 부흥 운동에 현혹된 형제와 자매를 사랑하는 자들의 손에 들려진다면 좋은 도구가 될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가짜 부흥 운동에 현혹되었던 사람들 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되돌아오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교회는 진정한 개혁을 경험할 때, 비로소 진정한 부흥을 맛볼 것이다.


톰 스타이프
덴버 십자로 교회 목사
1997년 1월

January 3, 2011

성경 에 관한 통계

성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할 필요가 있을까? 20세기 탁월한 복음주의 지도자 가운데 한사람 이였던 마틴 로이드 존스(Martyn Lloyd Jones) 는 그의 책 "복음주의란 무엇인가" 에서 성경은 "최고의 권위일 뿐 아니라 유일한 권위" 라고 말했다. 또한 마틴 루터 는 "sola scriptura" 즉 오직 성경만으로 라고 외치며 부패 했던 천주교 로 상대로 종교 계혁 을 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성경 스스로 성경의 중요성 을 강조하고 있다:

여호수아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성경은 하나님의 정확하고 완벽한 계시 를 담고 있다. 성경을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하나님을 알수 없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 또한 성경을 통해서 알수 있는것 아닌가? 그럿듯 성경은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는데 너무나 중요하다.

이렇게 너무나 중요한 성경에 대해 더 알고자는 취지로 여러 성경의 통계에 대해서 조사해 보았다. 신앙생활 을 하는데 꼭 필요한 지식 들은 아니지만 우리가 성경의 매니아 라고 말할수 있을려면 이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하 자료는 King James Version 을 기준으로 한 통계 이다.)

* 권수 - 구약 39권, 신약 27권, 총 66권
* 장수 - 구약 929장, 신약 260장, 총 1189장
* 절수 - 구약 23145절, 신약 7958절, 총 31102절
* 단어수 - 구약 609247 단어, 신약 179011 단어, 총 788258 단어
* 가장 긴 책 - 시편
* 가장 짧은 책 - 요한2서(절수), 요한삼서(단어수)
* 가장 긴 장 - 시편 119편
* 가장 짧은 장 - 시편 117편
* 가장 가운데 장 - 시편 117편
* 가장 가운데 절 - 시편 103편 1,2절
* 가장 긴 절 - 에스더 8:9
* 가장 짧은 절 - 요 11:35


밑은 성경지킴이 라는 웹사이트 에서 찾은 성경통계표 이다. 아주 정리가 잘되어있다. (참고로 성경지킴이 라는 웹사이트 와 본 블로그 는 전혀 상관이 없음을 밝히는 바이다. 성경지킴이 라는 웹사이트 에서 밑에 정리표 를 찾았을뿐 본 블로그 는 성경지킴이 가 어떤 성격의 웹사이트 며 무엇을 하는 곳인지 전혀 아는바가 없음을 밝힌다.)

중보기도팀 회식







매주일 예배 와 셀모임이 끝나후 6시 까지 하는 중보기도모임 이 끝난후 우리 중보기도팀 은 Gusto Ristorante 이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에서 회식을 가졌다. 내가 회사에서 보너스 받아서 쏜다는 말에 모두들 들떠 있었지만 미리 예약을 잡지 않았던 우리는 좋은곳을 가려고 해도 8명의 자리가 available 한 레스토랑을 급하게 잡기란 쉽지 않았다. 십여분 의 전화 와 구굴 검색 후 우리는 Gusto 라는 곳이 맛이 있다는 성준이의 추천에 그곳에 가기로 결정 하였다. 다행히 전화 해보니 8명의 자리가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막상 그곳에 도착해보니 너무 텅텅 비어 있어서 막상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다. 만일 정말 맛이 있다면 왜 이렇게 일요일 저녁 같은 바빠야 할 시간에 이렇게 비어 있는지? 그러나 이미 그곳에 도착 하였고 다른 곳을 찾기도 쉽지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그곳에서 먹기로 하였다.



그러나 우려와는 달리 그곳의 음식의 맛에 우리 모두들 만족하였다. 얼마나 만족 하였으면 우리는 먼저나온 3개의 음식을 나머지 3개의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모두다 먹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양이 부족할꺼라는 결론을 금새 내리고 2가지 음식을 더 추가 하게된다. 우리는 전부 리조트 하나와 파스트 4개, 피자, porkchop 그리고 stuffed chicken 을 주문하여 먹었다. 음식들은 정말 너무나 맛이 훌륭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도데체 이렇게 맛있는 곳이 왜 이렇게 손님이 없는지 의아에 할정도 였다.



우리는 모든 음식 을 만족스럽게 마친후 디저트 로 마무리 하였다. 디저트의 맛 또한 굉장히 좋았다. 이렇게 분위기 좋은 음식적 에서 맛있는 음식을 사랑하는 중보기도팀 과 함께 먹으며 즐겁게 이야기 나눌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신 주님께 너무나 감사 하였다.

January 1, 2011

Goodbye 2010. Hello 2011~


2011 년 첫 새벽기도 날 목사님 이 계획 과 그 계획을 문서로 작성 하는것의 중요성 에 대해서 말씀 하셨다. Research 에 의하면 사람들의 95% 는 자신의 계획 들을 글로 정리 해보지 않았고 더 놀라운 것은 자신의 계획을 글로 정리한 5%의 사람중 95%가 자신들이 글로 정리한 계획 들을 대부분 이루었다는 목사님의 말을 듣고 나도 2011년에 이루고자 하는 목표 들을 정리 해서 글로 써봐야 겠다는 다짐을 하고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2011년에 이루고자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먼저 결정하는 것이 순서 였다. 그래서 나는 새벽기도 대부분 을 내가 2011년에 어떤 목표 들을 세워야 할것인지에 대해서 기도 하였다. 물론 내가 원하고자 하는 것들이 있지만 먼저 주님안에서 결정 해서 내것이 아닌 주님의 것을 이루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도한 결과 는 이러하다:

2011년 목표:


  • 하나님의 성경 말씀에 사로잡힌 사람이 되는것(말씀 통독 + 말씀을 더 읽는것). 2011년 말씀 최소한 180시간 이상 읽기.

  • 기도의양 이 예전 처럼 다시 많아 지도록. 2011년 기도 최소한 180시간 이상 읽기(중보기도팀 기도 시간 제외).

  • 더 많은 재정의 축복을 받아서 더 남들에게 더 큰 재정의 축복의 통로가 될수 있도록

  • 몸 더 건강해지는 것(건강을 위한 기도 + 건강한 생활습과 과 음식)

  • 믿음의 배우자

  • 만남의 축복(정말 깊은 우정을 나누는 친구 들을 이 뉴욕 땅에서 많이 사귀는것)

  • 책 20권 이상 읽기

  • 브니엘 바이블 아카데미 캠퍼스 전도와 성경공부 사역

  • 회사에서 develpment 로 transfer 하는 것

  • 열방기도회 사역

  • 중보기도팀 사역

  • 데님팀 사역

  • 셀장 사역

  • 영어 실력을 더 늘려서 회사 사람들과 더 깊고 많은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누고 그 들과 더 친해질수 있도록. 또한 영어 로도 한국말 로 하는것 처럼 기도 하고 성경 공부 가르킬수 있도록.

  • 55151515



리스트 를 작성 하고 보니 정말 목표가 많은거 같다. 그러나 꿈은 크게 꾸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나의 2011년 목표 들이 절때 꿈 같은거라고 생각지도 않고 주님 안에서 충분히 가능한 목표 들이라고 생각한다.

이 목표 들의 성취 들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 하고 또한 시간 관리를 잘해서 주님 안에서 많은 열매를 맺는 2011년이 되기를 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