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3, 2013

복음주의란 무엇인가를 읽고서

내가 처음 예수님을 믿기시작했을때 나는 복음주의나 자유주의 라는 단어는 들어보지 못했다. 내가 다녔던 교회의 목사님들중 그 누구도 당시 교회의 믿음성향 이라던가 속해있는 교파의 교리를 체계적으로 설교하시거나 가르쳐주신분이 없었다. 심지어 장로교 와 감리교의 차이점도 몇년이 지난후에나 알게되었다. 그렇게 교리적으로 체계적인 밑바탕이 없었던 나는 은사주의 와 신비주의 그리고 자유주의 가 건강하지 못한것이란것을 전혀 알지 못한것은 물론이며 그들의 차이점을 구별조차 하지 못했다. 아주 단순하게 예수님 이름이 들어가면 다 좋은것이고 기도하면 다 거룩한것으로 여겼다. 성령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은사나 기적은 당연히 나에게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이시며 나를 특별히 사랑하셔서 경험하게 해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것들이 나의 신앙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즉 분별력이 전혀 없었던것이다. 다행히도 하나님의 은혜로 성경과 교리에 관해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게되었고 그럼으로써 복음주의는 무엇이며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배울수 있었다.  특히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책 복음주의란 무엇인가 복음주의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와 왜 우리가 복음주의를 위해서 싸우고 방어해야는지 그 이유에 대해 자세히 알수있는 좋은 자료가 되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유다서 1:1-3 말씀으로 그의 책 복음주의란 무엇인가 를 시작한다. 유다서 1:1-3 은 유다가 유다서를 쓰는 동기를 서술한 부분인데, 즉 유다는 그때 당시 교회를 공격하였던 잘못된 신앙관들과 이단적인 의견들을 상대로 온전한 신앙의 도에 대해 가르치기로 했다고 나오는 부분이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도 본인이 책을 썼을때 당시의 상황이 유다서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즉 건강하지 못하고 잘못된 신학적 이론이나 신학사상 들이 복음주의를 공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먼저 복음주의를 계속해서 정의 해야한다는 주장으로 시작한다. 교회의 역사를 통해서 알수있듯이 사람들의 죄성 때문에 교회는 계속해서 퇴보적인 변화를 거듭해 왔다. 그러한 퇴보적이고 부정적인 변화는 복음주의에도 일어나고 있다. 예를들어 온전한 복음주의 가 아닌것들이 복음주의 라는 울타리 안으로 미묘하게 들어오고 있다. 신복음주의 등등을 비롯한 여러가지 사상이 그렇다. 또한 실제로는 복음주의자 가 아님자들이 어떠한 특정한 한부분 때문에 복음주의자 라고 여겨지는 사례를 많이 볼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미묘한 변화들이 복음주의를 위협한다고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주장한다. 예수님이 비유를 위해 사용하신 좀과 동록처럼 감지를 못할정도로 서서히 침투해서 결국에는 완전히 부식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서 우리는 복음주의를 정확히 정의 해야한다. 그럼으로 은밀하게 복음주의에 침투하려 하는 여러가지 사상들을 대항하여 온전한 복음주의를 지킬수 있다. 복음주의는 한정된 용어인것을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강조하면서 복음주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복음적 신앙이 기독교 신앙 교리 자체를 참되게 표현하는 유일한 길”이며 “이러한 교리를 가르치고 전해야 사람들이 회심하고 교회에 가입하는 일이 있기때문이다”.

본격적으로 복음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먼저 복음주의를 정의할때 있을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첫번째 위험은, 복음주의를 너무나 지나치게 좁고 상세하며 자세하게 정의하는 것이다. 이러게 너무 협소한 정의는 교회들을 분열시킬수 있기 때문이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고린도전서 에 나오는 고린도교회 를 예로 든다. 고린도 교회는 베드로(게바)파, 사도바울파, 아볼로파, 그리고 그리스도파 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들은 다 예수님을 예수님이 메시아 이시며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수 있다는 신앙의 중심적 교리에는 일치했지만 구원에 본질적이지 않고 필수적이지 않은 문제들 때문에 분열이 되었었다. 그리고 이러한 분열의 위험성은 우리가 복음주의를 지나치게 완고하게 정의할때 올수있는 위험성인 것이다. 복음주의를 정의할때 주의해야 하는 다른점 한가지는 바로 너무나 넓고 개방적으로 복음주의를 정의하는 것이다. 복음주의를 패쇠적으로 정의하는것 보다 더 큰 위험이 될수있다고 마틴 로이드 목사님은 주장하면서 그 이유는 지금의 시대는 에큐메니컬 운동(교회일치 운동) 의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러한 에큐메니컬 주의 때문에 복음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허용하게 되며 교리를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복음주의적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주의자 로 여겨지는것 뿐만이 아니라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일도 많이 있게된다. 대표적인 예가 C. S Lewis 이다. 그는 본인 스스로도 자신은 복음주의자 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현대의 복음주의자 들에게 C. S Lewis 는 거의 수호성인 으로 여겨진다. 이런식의 에큐메니컬 정신은 우리가 궁국적으로 신앙을 배반하고 더이상 복음주의자가 아니게 만드는 위험 요소라고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말하고 있다.

위에 두가지 말고도 복음주의 를 위협하는 위험요소 두가지가 더 있는데, 하나는 은사체험운동 이며 다른 하나는 교회일체운동를 비판하는 비복음주의적 교단이나 그룹들이라고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주장하고 있다. 은사체험운동이 위험한 이유는 은사체험운동은 소위 말하는 “성령세례”이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가르키기 때문이다. 즉 교리 보다 성령 이라고 가르키는 셈인 것이다. 전통적인 신앙과 교리를 무시하고 은사체험을 통해 생명력있는 신앙을 강조함으로 신약성경의 진술과 교회을 거슬리는것을 물론이고, 교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교회와 교파들이 성령체험을 통해 하나될수 있다고 주장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견해는 이미 복음주의 진영에 들어와서 복음주의 신자들의 입지를 공격하고 있다. 이러한 영향때문에 영국성공회 내의 복음주의자들은 이미 에큐메니컬 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되었다. 마지막으로 에큐메니컬 운동을 비판하는 비복음주의적 교단이나 그룹들도 조심해야 한다고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에큐메니컬 운동에 비판적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비복음주의적 진영과 복음주의적 진영을 하나로 보는 경향이 있을수 있기때문이다. 그러나 복음주의자 들은 그러한 속임수에 넘어가서는 안되며 확실한 복음주의적 입장을 고수해야 한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이어서 복음주의 를 정의하는 4가지 방법론 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그 첫번째로 복음주의를 정의할때 우리는 오직 성경적으로 정의해야 한다. “복음주의자는 성경과 더불어 출발”하며 “성경의 사람” 이라고 마틴 로이드 목사님은 주장한다. 성경만이 유일한 권위 이며 모든일에서 성경에 복종해야 한다. 두번째는 복음주의를 정의하는 방법은 역사적이어야 한다. 기독교 역사에서 일어난 여러일들을 보며 우리는 교훈을 얻을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같은 잘못은 되풀이 하지 않고 발전할수 있어야 한다. 세번째는 복음주의를 정의할때 부정적인 점들을 견지할수 있어야 한다. 이 뜻은 복음주의자들이 해야 하는것 이외에도 해야하지 말아야 하는것들 또한 견지하고 확고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복음을 부정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복음주의자 라고 할수 없으며 복음주의자 라면 마땅히 해야하지 않는 점들 또한 확실히 명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방법론으로는 진리에서 무엇을 빼거나 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목회자가 복음주의적인가를 판단할때 중요한것은 목회자가 무엇을 전하지 않는가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 진리 전체를 전하지 않고 일부만 전하는 것은 오늘날 커다란 문제라고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전하면서, 성경과 십자가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지 않은지 예의 주시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진리에 무엇을 더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좋은 예로 카톨릭을 들수 있는데, 그들은 복음위에 여러가지를 복잡하게 더했기 때문이다. 결국은 요한계시록에 나온것 처럼 우리는 성경에 무엇을 더하거나 빼지 않아야 한다.

복음주의를 정의해야 하는 이유, 복음주의를 위협하는 요소들, 그리고 복음주의를 정이하는 방법론에 관한 강의에 이어서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복음주의자의 일반적인 특성을 이야기 한다. 첫번째 복음주의자의 특성은 성경에 온전히 복종하는 사람 이라는것이다. 복음주의자 는 성경이외에 다른 어떤것으로 부터 출발하지 않으며 자신을 온전히 성경의 가르침에 제한하고 복종시킨다. 또다른 특징은 복음주의자는 자신이 속해있는 교단과 상관없이 자신의 신앙이 복음적이야 한다는 것이다. 교단이 장로교 이거나 침례교 이거나 하는것은 이차적인 문제이며 본인의 신앙이 복음적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복음주의자는 항상 깨어있는 사람이다. 그 이유는 성경이 항상 깨어있으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항상 깨어서 기도하며 적그리스도 와 거짓교사들의 공격을 분별하고 시험할수 있는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복음주의자는 이성을 신뢰하지 않는다.  특히 철학적 형식을 취한 이성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 뜻은 이성을 무시하거나 반학문주의자나 반지식주의자 가 되라는것이 아니라 인간의 학문이나 이성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인 성경말씀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성과 학문을 제위치 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과 삶에서 이성이 차지하는 위치는 무엇일까? 이성을 우리가 믿어야 할 내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믿어야 할지를 결정하는데 쓰이는 도구일 뿐이라고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말한다. 만일 이성이 우리가 믿어야할 바들을 결정하게 된다면 그것은 반드시 문제를 일으킨다. 즉 성경에 복종하지 않고 학문이나 철학 과학들에 의존 하게 되면 신앙의 근본적인 위치 마저도 흔들리게 되는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복음주의자 들은 이성과 학문을 두려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이성과 학문을 잘알고 그것들을 부리며 이성과 학문에 굴복하지 않는다. 인간의 이성과 생각에서 나온것은 우리를 해할수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나머지 복음주의의 일반적인 특징들에는 성례에 관해 특별한 견해를 취한다는 것과 역사와 전승을 비평적으로 바라본다는 것, 그리고 항상 모든것을 단순하게 바라본다며 교회의 교리에 관심을 둔다는 것이다. 복음주의자 들은 대체로 성례에 관해서 낮은 견해를 취한다. 그리고 복음주의자들은 연속성 보다는 불연속성을 강조한다. 카톨릭은 연속성, 즉 전승을 강조하지만 복음주의자 들은 자신들의 속해있는 교단의 전승 보다는 본인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다. 마틴 루터가 그랬으며 캘빈과 존 녹스가 그랬다.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서라면 변화를 무서워 하지 않고 자신히 믿는바에 따라 행동할수 있는 사람이 복음주의자 이다. 또한 복음주의자는 모든것을 단순하게 보는 사람이다. 카톨릭의 교리와 교회법 은 너무나 복잡하고 어렵다. 그러나 복음주의적 교리는 단순하며 형식적인 것을 지향하지 않는다. 오직 주님이 주신 자유를 누리며 형식주의에서 벗어나 정말 중요한 것에 집중할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복음주의자는 교회이 교리에 관심을 둔다. 복음주의자 들은 순수한 교회에 관심을 두며 국가교회를 믿지 않는다 그리고 기독교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는데 많은 관심을 둔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강조하는 또하나의 복음주의자의 일반적인 특징은 복음주의자 는 중생을 강조한며 부흥에 관심이 있고 설교에 우선권을 두며 전도에 항상 관심을 둔다는 것이다. 복음주의자는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나 주님 안에서 새생명을 얻으며 예수님의 신적 본성에 참여한다. 그렇게 때문에 복음주의자 에게는 기도는 굉장히 중요하며 매일 매일 삶에서 경건하게 살아가도록 노력한다. 또한 부흥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으며 교회가 부흥할수 있도록 기도하며 노력하는 사람이다. 또한 복음주의자는 설교의 권세를 인정하며 설교를 중요시 여긴다. 설교를 인격을 통해 전해지는 진리로써 받아들인다. 그리고 복음주의자는 전도에 힘쓰는 자이다. 만일 전통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전도에 관심이 없다면 복음주의자라고 할수 없다고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주장한다. 그만큼 전도는 진정한 복음주의자 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복음주의자의 일반적인 특징을 정의한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이어서 근본적인 진리와 부차적인 진리에 관해서 정의한다. 근본적인 진리는 바로 복음주의자들이 반드시 고수해야 할, 타협할수 없는 진리를 말하며 부차적인 진리란 참되기는 하되 필수적이지는 않은것들로써 의견차이가 받아들여질수 있는 진리를 말한다. 교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에큐메니컬 운동가 들을 비판하면서 교리가 너무나 중요하고 근본적이라고 다시한번 강조하면서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먼저 근본적인 진리들 부터 정의한다. 그 첫번째는 바로 성경이 복음주의자들의 최고의 권위 일뿐만이 아니라 유일한 권위라고 정의한다. 유일한 권위라고 까지 명확히 정의하는 이유는 카톨릭 에서 인정하는 교회의 전승의 권위의 허용을 견제하기 위해서이다. 복음주의자들에는 성경이외에 그 어떤것도 기준이 되어서는 안되며 권위가 되어서는 안된다.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의 진리는 인간의 이성과 철학으로 얻어낸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것이며 성경은 명제적 진리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또한 초자연적 요소가 있음을 강조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문자적 진실성과 역사성을 믿어야 한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면 그것은 성경전체에 해당되어야 하며, 성경이 역사로 우리에게 계시되고 있다면 그것을 역사로 믿어야 한다” 고 주장하며 성경이 하나의 완전한 전체임을 강조한다. 그럼으로 성경에 대한 견해를 과학적 주장에 근거하여 세우는것은 올바르지 않을뿐만 아니라 너무 위험한 행동이다. 과학적 주장은 항상 가변적이고 항상 움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직 우리의 견해를 성경에만 두어야 한다. 또한 복음주의자들은 마귀와 악한 영들의 존재를 인정해야 하며 또한 사람이 영적으로 죽어있으며 인간 스스로는 선해질수 없고 구원받을수 없다는 사실들을 강조해야 한다. 또한 속제 교리에 관해서는 속죄의 대속적 측면과 요소 그리고 대리 형벌을 강조해야 하며 오직 믿음으로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교리 또한 특별히 강조해야 한다고 로틴 마이드 존스 목사님은 주장한다. 또한 복음주의자는 국가교회 를 신봉할수 없으며 성례의 순수성을 강조해야 한다. 그리고 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분하는 개념을 배척해야 하며 성례문제에 관해서 어떠한 주교주의 도 배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또한 성례 자체와 그것의 어떠한 자동적 효능에 관해서도 믿지 않아야 한다.

부차적인 진리들중에 첫째는 선택과 예정에 관한 신앙이다. 이것은 구원의 과정에 대한 이해일뿐 구원의 방법에 대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세례를 받을수 있는 연령과 세례를 집행하는 방식에 관한것이다. 이것들에 관한것은 성경에서 구체적으로 입증할수 없기 때문에 교단마다 각자의 해석과 방식의 여지가 있다. 또한 예언의 해석 문제, 즉 전천년설, 후천녀설, 그리고 무천녀설 등의 관한 것들도 부차적인 진리들중에 포함되며 성화의 방식에 대한 비본질적인 것들과 마지막으로 성령세례와 영적은사에 대한 견해도 부차적인 진리들에 포함된다고 주장하면서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그의 책 복음주의란 무엇인가 를 마무리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세대는 다원주의 가 팽배하게 퍼져있는 세대이다. 사람들의 사고방식 과 문화의 여러방면에서 절대적인 기준이 없어지고 서로를 인정하며 포용하자는 달콤한 인본주의적 표현으로 포장된 다원주의 가 넓게 퍼져있다. 이러한 변화는 교회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교회는 복음주의적 성향의 보수적인 장로교회 를 다니지만 신앙성향은 비복음주의적 신앙성향들, 예를 들어 자유주의나 성령중심주의, 은사주의, 그리고 에큐메니컬 성향의 색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을 주변에서 굉장히 많이 볼수있다. 이러한 비복음주의적 사상들은 어떠한 뚜렷한 형체를 가지고 들어온것이 아니라 여러 매체를 통하여 부분적으로 서서히, 그러나 무분별하게, 들어와서 복음주의를 흐리고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 에서는 복음주의를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보존하는것에 중점을 두고있는 교회는 찾아보기 힘든것이 사실아닐까? 내 주변에 복음주의 라는 단어를 들어본 사람이 많지 않다는것만으로 알수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그의 책 복음주의란 무엇인가 에서 우려한데로 비복음주의적 사상들이 서서히 교회로 침투해서 이제 복음주의는 그 정체성이 무너진것 같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주장하신대로 교회는 복음주의 를 보존하고 방어해야할 필요가 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 시대보다 더더욱 그러하다. 복음주의는 점점 멸종위기 에 처해지고 있는듯 하기때문이다. 복음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는 사역자분들이나 믿음이 특별히 좋은 소수를 위한것만이 아니라 복음주의적 교회를 다니는 모든 성도들에게 필수인것이다. 주님안에서 건강한 복음주의적 신앙을 가지만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부흥하기를 기도한다.

클릭 모먼트?

우리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기업 이나 사람들을 보면 성공의 순간을 보지 성공이 있기까지의 과정은 보지 못한다. 성공을 획득하기 까지 있었을 엄청난 노력과 고난을 이야기 하자는게 아니다(물론 엄청난 노력과 고난이 있었겠만 만일다). 모든 성공들은 치밀한 분석과 계획을 기반으로 이루어진것일까?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을 예측했을까? 책 "클릭 모먼트(Click Moment)" 의 저자 프란스 요한슨 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대표적 성공사례 들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엄청난 "우연" 으로 이루어져있다고 프란스 요한슨 은 이야기한다. 대표적으로 구글, 마이크로 소프트의 Windows 를 예로든다. 구글의 창시자들은 본인들이 만든 페이지 랭킹 알고리듬을 야후에 팔려고 했었다. 즉 본인들이 직접 검색앤진을 만들어서 사업을 이어나가는것보다 다른 회사에 본인든이 만든 기술을 매각하고 난후 편안하게 본인들의 원래 직업이었던 박사학위를 이어갈려고 했던것이다. 물론 야후는 구글의 기술을 사들이지 않았다. 야후는 물론이거니와 구글의 창시자들 조차 본인들이 만든 기술이 세상을 바꿀말한, 전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회사중 하나가 될것이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만 구글은 본인들이 기술을 살려는 회사가 없어서 "어쩔수 없이" 본인들이 직접 검색앤진 회사를 차리게 된것이 결국 오늘날의 구글의 성공을 이루는 시작이 된것이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Windows 3.0 도 마찬가지였다. 마이크로 소프트는 Windows 3.0 의 개발에는 오직 몇명의 엔지니어만을 두었다고 한다. 즉 Windows 3.0 의 개발에 그다지 큰 가치가 있고 생각지 않은것이다. 그러나 몇몇의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Windows 는 출시되게 되었고 우리가 알고있듯이 마이크로 소프트 사의 Windows 는 엄청난 성공을 이루게 된다.


 이럿듯 오늘날 누구나 알고있는 큰 성공들은 치밀한 계획과 분석, 예측안에서 이루어진것이 아니라 "우연"의 연속이 그 성공들을 만들었다고 프란스 요한슨은 말한다. 오히려 치말한 계획과 분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추진해 나간 프로젝트 들은 실패했던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한다. 즉 이말은 성공을 이루기는 요소는 너무나 복잡하고 많은 변재와 우연이 따르기 때문에 아무리 총명하고 기술가 능력이 넘치는다고 하더라도 쉽게 예측하고 분석할수 없다는것이다. 그러므로 오히려 성공을 이루는 요소중 하나가 "운" 이라는것을 인정하고 이 운이 따라줬을때, 즉 클릭모먼트 가 발생했을때 이것을 잘 인지하고 추진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프란스 요한슨은 말한다.그리고 이런 클릭모먼트가 더 많이 발생할수 있도록 전략을 잘짜는것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한개의 대박의 아이디어에 올인을 하는것보다 실패를 해도 감당이 가능한 도전들을 여러게 하는것이 더 중요하며 일단 해보는 실천성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언제든지 어떠한 형태로든 클릭모먼트가 생길수 있으므로 삶을 살아가면서 모든 관계를 중요시하고 연결의 고리를 넓히는것이 중요하다고 프란스 요한슨은 그의 책 클릭 모먼트에서 이야기 한다. 우리나라에도 "부자는 하늘이 내려준다" 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사람이 본인의 힘으로 성공을 위한 모든것을 제어 할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성공뿐만이 아니라, 사람은 본인의 아무것도 제어 할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전에 힐링캠프 라는 쇼에서 박진영이 나와서 한말이 기억난다. 박진영은 사람이 자기 몸의 주체가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사람은 자기가 언제 배고플지, 언제 졸릴질, 언제 생리작용을 할지 를 전혀 결정하지 못한다. 자신이 감기가 걸릴지 안걸릴지, 자신의 감정이 기쁠지 우울할지 전혀 제어할수 없다. 감기가 걸리면 걸리는것이고 음식을 안먹으면 배고픈것이다. 음식을 안먹어도 안배고플수 있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의 몸을 제어하지 못하기때문이다. 사람이 제어할수 있는 몸의 부분은 손, 발 등등 몸의 일부분일 뿐이다. 그런 부분조차 병이걸리면 제어할수 없게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자신들이 자신의 몸의 주체인냥 살아가는 것은 아마 사람들이 분석과 계획, 자신들의 이성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해낼수 있을꺼라고 믿으며 살아가는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프란스 요한슨은 클릭모먼트 라고 불렀지만 난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이라는 말이 잠언에 있다. 프란스 요한슨은 그의 책을 통해 클릭모먼트, 즉 성공을 만들어내는 우연을 잡는 방법을 설명하려고 하지만 우리 기독교인들은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 전지전능 하시며 인간의 모든것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인것을 안다. 무엇인지도 몰르는 막연한 "우연" 이라는것을 잡을려고 하는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우연이 잡히면 우연도 아니거니와, 우연은 없고 그 모든것 뒤에서 하나님의 계획하심 만이 있는것이다. 모든일에 역사 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만 붙잡고 매달리고 오늘도 그에게 모든것을 맡길때 그가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고 축복하실것이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잠언16:3)

July 5, 2013

새로운 디지털 시대가 기독교에 가져올 영향은?

구굴의 전 CEO 인 에릭 슈미트 와 Google idea 의 총책임자 인 제러드 코언 이 쓴 새로운 디지털 의 시대 (The new digital age) 에서 저자들은 인터넷 이나 유사 종류의 네트워크 를 통해 곧 전 세계가 연결됬것이며 그로인해 여러 변화들이 생겨날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새로운 디지털 시대에는 어떻한 변화들이 있을것인지를 예측한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많은 부분을 중동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변화들을 이야기 한다. 중동의 지역적 그리고 종교적 특성상 그곳에 살고 있는 시민들은 굉장히 제한적이고 페쇠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가지고 있었지만 트위터나 페이스북 유투브 등등을 통하여 정부나 종교단체의 탄압과 지휘에서 벗어나서 자국내에서 그리고 또 국제적으로 어떻게 소통하며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내는지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국가들 또한 어떻게 이러한 변화들(개개인 들이 인터넷을 통하여 국가와 기관의 통제를 벗어나 다른 집단이나 개인들과 연결되는) 에 대응하고 있으며 또한 앞으로 대응해 나갈것인지 또한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을 읽으면서 나는 이러한 초접속 시대가 기독교에는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것인지를 생각해봤다. 이미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인터넷 보급과 활동이 활발한 국가에서는 인터넷을 통하여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전에는 겪을수 없었던 편리함을 누리고 있다. 예를들어, 인터넷을 통하여 여러 찬송가나 CCM 들을 들을수 있고 여러 목사님들의 설교를 언제나 원할때 들을수 있다. 인터넷을 통하여 전세계에 있는 사역자님들과 교회들이 서로 협력하고 정보를 교환하며 기도제목을 나눌수 있게 되었다. 반면에 인터넷이 가져온 많은 단점과 피해들도 있다. 너무 편리해진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예전 우리의 신앙의 조상들이 가지고 있단 정성과 진실함이 결여되는 상황이 되는것을 많이 볼수있다. 소셜 사이트 들을 통해 자신의 설교와 의견을 많은 사람들에게 간편하게 퍼트릴수 있게 됨으로 사역을 확장하는데 있어 너무나 편리해졌지만 또한 이점 때문에 자신의 인기를 관리하는것에 더 중심을 두는 사역자님이 한명도 없다고 말하기도 힘들어졌다. 몇몇 교회의 실수와 부패가 인터넷을 통해 삽시간으로 퍼지면서 그것이 모든 교회들을 대표해버림으로 교회의 이미지를 추락시키는 것은 이제 이미 흔한 일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에릭 슈미트와 제러드 코언 의 책 새로운 디지털 시대 에서 말하듯이,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더라도 전 세계는 더더욱 인터넷을 통해 연결될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막을수 없다. 기독교계는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반응 해야 할것인가? 인터넷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집을 떠나지 않고 세상 끝까지 도달할수 있다. 이 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할수 있을까? 우리는 인터넷이 제공하는 점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주님의 복음이 전파되는것에 힘씀과 동시에 인터넷이 갖고있는 단점들을 주의하며 주님의 영광에 누가 되는 일을 피할수 있도록 연구하며 주님의 지혜와 인도하심을 간구해야 할것이다.